하지만 아직도 많은 현실 속의 아이 어머니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정을 잊고 산다. 우리의 도시를 보면 보이는 많은 집들이 서정을 상실하거나 복제되어 강요된 서정을 보여 줄 뿐이다. SNS 속 명소라는 곳들이 사실은 자신이 갖지 못하는 서정을 일시적으로나마 대신 차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약간은 씁쓸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지어진 지 몇 년 지났지만 서정하면 떠오르는 집이 있어 잠깐 돌아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축가 중 한 분인 정재헌 건축가가 설계하고 2015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도천 라일락집`이다. 서울 명륜동 성균관 근처 고즈넉한 분위기의 주택가, 고(故) 도상봉 화백이 1930년대부터 살던 터에 새로 지어 후손이 살고 있다. 도천 라일락집은 마당을 중심으로 창을 통해 서로를 볼 수 있는 한옥식 공간 구조를 차용하여 `ㄱ`자 형의 전벽돌 2층 건물과 오브제 같은 형태의 적벽돌 1층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거주자들의 삶을 안온하게 보호하며 행인들에게는 길 건너 성균관 건물들에서 느껴지는 색감을 연상하게 하는 동시에 형태적 대비를 이루어 묘한 어울림의 정취를 제공하고 있다. 집 주인과 건축가가 공유하는 서정의 표현이라 생각된다.
공간의 구성과 배치, 형태뿐 아니라 외벽의 재료를 다룬 디테일에서도 세심한 서정의 표현이 관찰된다. 전벽돌조 건물은 반듯한 원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시공했으나 적벽돌 건물은 벽돌 쌓기를 하고 정으로 깨서 햇빛의 방향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을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세심하고 정성스러운 수작업의 결과이다. 이는 서정이 때로는 지극한 정성에 의하여 한층 더 극명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건축주는 사실 이 터와 옛집을 처분하고 이사 갈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문화재보호구역 내에 위치한 데다 할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점 때문에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다가 "역사가 담겨 있는 장소를 후손들이 새 기억으로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축가의 조언에 새 집을 짓기로 했다고 한다. 집의 당호인 `도천 라일락집`은 도상봉 화백의 호와 즐겨 그리던 라일락의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을 담고자 하는 의도를 엮어 지은 이름이다. 또한 집을 구상하고 짓는 과정을 집주인은 사진일기로 남겨 서사화하기까지 했다. 건축은 건물이 아니다. 물리적 형태로 빚어내는 서정이고 서사라고 볼 수 있다.
한동욱(남서울대 교수·㈔대한건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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