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원장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원장
지난 2월 10일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55주년 기념일이었다. 1966년 당시 1인당 GDP 133달러의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농업국가 대한민국에서 국가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정책은 선진국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국제적인 관심사였다. 존슨 미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으로 미국의 대표적 산업·응용기술 연구소인 바텔기념연구소를 벤치마킹한 KIST는 기업에 필요한 선진 산업기술의 도입·보급을 임무로 채 일 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탄생하였다.

이후 KIST의 운영은 설립과정 이상으로 파격적이었다. 최형섭 초대 연구소장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보장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해외 체류 중인 한국 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해 높은 연봉을 책정하여 심지어 대통령이 본인의 월급보다도 많은 월급을 선뜻 승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특수법인으로서 정부 예산회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아 회계감사를 면제받기도 했다. 덕분에 초기 5년간 정부 R&D 예산의 16%에 해당하는 54억 40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국공립 이공계 대학의 총 실험실습비 43억 6000만 원보다도 큰 규모여서, KIST에만 국가예산이 집중된다는 학계의 반발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를 묵살하며 KIST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정책을 밀고 나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KIST는 `한강의 기적`을 최선두에서 이끌어 경제개발계획의 중점기술을 육성하고, 산업화의 심장이 된 포항제철의 건설계획을 수립·검토했다. 아라미드 펄프, 리오셀 섬유, 인조 다이아몬드 등 수출의 원천기술도 개발했다. 2016년 한 평가에 따르면 설립 이후 47년간 KIST가 우리 경제와 사회에 미친 파급효과는 595조 원이라고 한다. 이는 같은 기간 투입된 정부예산의 53배에 달하는 규모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공한 국가연구소가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한 대표적 성과이다.

이후 45년이 흘러 정부는 비슷한 모험을 한 번 더 감행했다. 국제사회에서 기적이라고 인정받는 발전된 국가 위상에 걸맞고 미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기초과학을 전담할 연구소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에서 기초과학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며 그마저도 소규모의 연구를 산발적으로 지원해 오고 있었다. 과거 산업화 시대를 산업·응용기술 연구소가 이끌었듯, 지식기반 시대의 국가발전에는 기초과학 연구소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했다.

앞으로 IBS는 KIST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까. IBS도 KIST처럼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기존 정부출연연구소와 달리 연 100억 원을 지원하는 연구단 체제를 갖추고, 연구단 구성·운영, 연구 주제 선정 등에 있어 연구단장의 자율성을 완전히 보장하여 개방적, 창의적 연구로 세계적 성과 창출을 지원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초기 KIST의 경우와 같이 너무 많은 자원이 집중된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세계최고 수준의 학문적 우수성을 검증받은 국내외 우수 연구자들이 IBS로 몰렸다.

IBS는 설립 후 짧은 기간에 급성장을 이뤘다. 2016년 네이처인덱스는 IBS를 세계 100대 `라이징 스타`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이어 11번째로 선정했다.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25개 연구기관의 대표사례로 꼽힌 것이다. 금년 설립 10년을 맞는 IBS는 최초의 운영 정책이 다소 변경되고 예산 규모도 축소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 기초과학 연구소들과 경쟁하고 국내외 관련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기초과학의 세계적 연구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IBS의 발전과 과학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성과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선도에 필요한 핵심요소임을 IBS는 명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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