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유동인구가 어느 정도 있는 뒷길 길거리에 노점이 늘어선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오후 느지막이 판을 벌리기 시작해서 밤늦게 장사를 끝내고 짐을 거둬 간다.

하지만 때로는 그 자리에 있는 장사 물품을 다 거두지 않고 일부를 그냥 두고 가기도 한다. 혹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푸른색 방수천으로 덮어서 노끈으로 묶거나 돌로 눌러 놓은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우선은 무거운 짐을 들고 오가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거리의 목 좋은 장사 자리를 미리 맡아 두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위험 요소도 있다. 본인이 없는 사이 누군가에 의해 소중한 장사 밑천을 털리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아침 출근 길에 노점 자리를 덮은 방수천 앞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는 경고문을 보았다. "불력박스 감시 중, 건드리지 말 것"

불력박스? 아마도 항공기나 자동차에 감시용으로 설치하곤 하는 블랙박스(Black Box)의 오기(誤記)일 것이다. 하지만 출근하는 내내 `불력`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필자가 알고 있는 `불력`은 부처님의 영험한 공력이나 신통력을 뜻하는 `불력(佛力)`이었다.

고려시대 우리 선조들은 몽골의 침략을 이 `불력(佛力)`으로 물리치기 위해 팔만대장경 조판이라는 국가적 대사업을 진행했다. 당시에도 물론 가만히 앉아서 불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여러 측면에서의 노력과 시도에도 당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떨게 했던 몽골 기마병을 물리치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30년간의 항쟁 후 고려는 결국 굴복당해 몽골의 부마국이 되고, 제주도와 함흥 주변을 비롯한 영토 일부를 상실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나라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이후 공민왕 대에 이르러 마침내 몽골 세력을 몰아내고 잃었던 땅을 모두 수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과에 `불력`이 어느 정도나 작용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팔만대장경으로 구현된 지도층과 백성의 간절한 염원은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어려운 국난을 이겨내는 데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 어언 한 해가 지났고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힘든 시기에 그리 넉넉할 것 없는 노점 장사 밑천을 털어갈 정도로 박한 인심은 없으리라 믿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상황이 걱정될 수 있을 것이다. `불력박스 감시 중`은 그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어쩔 수 없는 퍽퍽한 현실이 서글퍼진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중생(衆生)에 대한 무한한 부처님의 자비(慈悲)가 구체화된 화신(化身)이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 또는 그냥 줄여서 천수관음(千手觀音)이라 불린다. 중생의 고통과 어려움을 천 개의 눈으로 찬찬히 살피고 천 개의 손을 이용해 신속히 해결해 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존재이다.

굳이 천수관음의 공력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속 자비심인 불성(佛性)을 일깨우는 불력을 생각해 보았다. 마음속 불력으로 혹시라도 있을, 훔치려는 나쁜 마음을 거두어 줄 것을 일깨우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불력(佛力) Box`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살 만한 그런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후 같은 길을 지나며 그 푸른색 방수천 더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아, 놓아진 짐은 그대로였건만 경고문이 바뀌어 있었다, `감시 카메라 작동 중`이라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니 친절한 그 누군가가 글쓴이에게 슬쩍 언질을 해주었을까? `불력박스`가 아니라 `블랙박스`라고, 그리고 그것보다는 그냥 알아보기 편하게 `감시 카메라`로 쓰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팔만대장경에서 천수관음, 그리고 마음 속 불심으로 이어지던 내 무심의 나래가 다시금 그렇고 그런 감시 카메라로 가득 찬 일상으로 돌아왔다.

김대경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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