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표성 대전여성문학회 회장
강표성 대전여성문학회 회장
이 즈음이면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설날이 되면 고향마을은 축제분위기였다. 물가에 내려앉는 두루미 떼처럼 하얀 두루마기 행렬이 동네 초입까지 이어졌다. 그 무리에 끼어 고샅의 가장자리를 걷노라면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와삭와삭 들렸다. 집집마다 차례 음식과 떡국을 대접하느라 부뚜막의 열기가 식을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방안에 둘레둘레 모여 덕담을 나누고, 서로서로 따뜻한 아랫목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설을 쇨 때마다 대처로 나가있던 오빠 언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훌쩍 큰 모습으로 내려와선 `그랬니, 저랬니` 하는 서울 말씨를 쓸 때면 신기했다. 그들 틈에 끼면, 한 살 더 먹는 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뿌듯했다.

전통사회에서는 설 명절이 한해의 분기점이었다. 시간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으로 구분되고 설날은 한해를 여닫는 문과 같았다. 새해를 맞이하여 서로 축복하며 따스한 봄날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어, 고향에서 돌아오는 가슴속에는 무지개 한 자락 피어오르곤 했다.

코로나19는 설 명절조차 회색빛으로 만들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가 연장되어 고향 방문이나 가족모임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모든 사람들이 `얼음 땡`할 수도 없고 이 어색한 `잠시 멈춤`이 낯설고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며늘아 설이라고 오지 말고, 설 쉬고 나거든 조용할 때 온네이` 애교 섞인 현수막이 어디 그 지역만의 일이겠는가. 설 연휴로 코로나가 확대재생산 될까 봐 누구나 걱정하는 바이다. 그야말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이 단순한 말장난으로 들리지 않는다.

2021년, 우리는 사상 초유의 설날을 맞이하고 있다. 내 가족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특별한 설날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선물은 택배로 보내고 영상으로 세배를 드리겠다는 이들도 많다. 올 설날은 비대면으로 지내고 세뱃돈은 온라인으로 지불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보인다.

설 연휴가 끝나면 새봄이 시작된다. 신학기에는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져야 하고, 자영업자들의 사업장에도 봄기운이 흘러 넘쳐야 한다. 우리에게 닥친 이 회색빛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우리의 봄날이 달라진다.

머잖아 남녘에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올라오리라. 강표성 대전여성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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