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이선미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얼마 전 투석환자 A씨의 연명의료가 중단됐다. 입원한 지 열흘 만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투석 받으러 오던 길이었다. A씨는 병원 1층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졌다. 바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회복되지 않자 에크모(체외막산소화 장치) 치료와 지속적신대체요법을 받으며 중환자실에서 지냈다. 의료진이 최신 의료기술로 적극적인 치료에 집중했지만, 회복력이 없었다. 이러한 삶의 연장은 무엇에 의미를 둘 수 있을까.

기계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내는 삶은 더는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다. A씨의 가족은 연명의료 중단을 원했다. 환자가 반 혼수상태에서 소생 가능성이 낮은 치료를 받는 모습은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큰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 A씨의 생명을 가족의 합으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연명의료 결정 제도인 존엄사법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연명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인 4가지 항목에서 시작해 작년에 체외막 산소공급,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이 더해졌다. 연명의료 중단은 환자가 의사능력이 없을 때 환자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있는 가족 전원이 이에 대해 동의를 해야 한다. 물론 스스로 의사 능력이 있는 성인이라면 사전에 자신의 연명 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둘 수 있다. 이는 자기 결정만 있으면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준비와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투석환자 B씨는 A씨보다 하루 앞날 사망했다. 투석 16년 차인 B씨는 올겨울 유난히 힘들어했었다. 최근 동정맥루가 혈전으로 막혀 투석 도관으로 투석을 했고, 투석 중 빈맥과 저혈압으로 불안정한 투석이 이루어졌다. 투석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침상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곤 했다. 투석실 하루가 끝날 때까지 B씨가 못 떠나고 있어 같이 문을 나서기도 했다.

한날 당직근무를 마무리한 어둑해진 퇴근길, 한적해진 병원 로비에 B씨가 홀로 있는 걸 봤다. 그날도 불안정한 투석이었기 때문에 끌리듯 B씨에게로 갔다. 더 어둡기 전에 집으로 가지 않고 여기 계셨나, 힘들면 입원하시라는 권유에도 반응이 시원찮았다.

나이 50이 넘은 B씨는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형제가 있지만 서로 살기 바빠 연락하지 않은 지가 몇 년째라고 했다. 간간이 일용직 노동을 해왔지만 코로나19 사태에 일감이 줄었고, 그마저도 병세가 나빠져 못하고 있었다.

투석이 끝나고 어지러워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자 B씨는 입원했다. 몸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갔고, 호흡부전에 대비한 심폐소생술이나 기관내삽관 치료 준비를 해야 했다. 연명치료 대비다. 환자는 연명의료에 대해 준비된 게 없었다. 병세가 위험한 상황에서는 본인의 뜻을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법적 보호자가 필요했다. 타국에 있는 형은 연명의료를 동의하지 않았다.

5년 전 우리병원 중환자실에 계셨던 친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시골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워 손녀인 필자가 일하는 대학병원으로 모셨다. 다리의 큰 혈관이 막혀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치료계획이 섰다. 수술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딜레마 상황에서 수술에 대한 동의를 했을 때 담당의는 심폐소생술과 기관내삽관 치료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 정이 깊은 필자는 모든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다.

할아버지는 수술을 이틀 앞둔 새벽 조용히 돌아가셨다. 지금도 중환자실에 가면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던 자리에 계시는 것만 같아 시선이 간다. 이제는 통증 없이 온전한 몸으로 편히 쉬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2년 전 미래를 위한 준비 중 하나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등록했다. 누구나 어떤 순간 자신의 문제를 자기 판단으로 선택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등록은 아주 중요한 순간에 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선물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선미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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