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석 목원대학교 스톡스대학 기초교양학부 교수
원은석 목원대학교 스톡스대학 기초교양학부 교수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바쁘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 속에서 선생님이 조종하는 캐릭터와 함께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오늘 경제수업의 과제는 5명씩 한 팀을 이루어 필요한 재료를 시장에서 구해 물건을 만들고 이를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이다.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팀이 이번 시간 우승팀이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긴장감 속에서 채팅으로 서로 상의하며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선생님은 게임 속에서 각 팀의 팀장 캐릭터들과 소통하며 학생들이 제대로 과제를 진행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수업을 이끌어간다. 과제 수행에 주어진 20분이 지나자 모두 게임을 끄고 팀 별로 모여 게임에서 수행했던 활동들을 정리해 발표했다. 교사는 발표 후 학생들이 알아야 할 개념들을 짚어준 뒤, 우승팀을 선정하고 축하해줬다."

위 내용은 학생과 교사가 게임에 접속해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G러닝 수업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COVID-19로 인해 비대면 교육이 대중화된 요즘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교육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G러닝 수업은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무려 15년 전, 2006년에 서울 목동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이루어졌던 수업이다. 지금 부각되고 있는 비대면 교육의 사례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이 G러닝이 이미 15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세계 최초로 진행됐던 것이다.

성과는 어땠을까? G러닝 경제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경제공부에 흥미를 갖게 됐고, 경제공부를 잘할 수 있는 효능감이 높아졌으며, 경제와 관련된 개념의 이해도도 향상됐다. 이러한 결과들은 연구논문으로 발표돼 효과성이 검증됐다. 또한, 서울의 목동은 전국적으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G러닝 수업이 종료된 후, G러닝 수업반이 아니었던 학부모들로부터 다음번에는 G러닝 수업반에 자녀를 넣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G러닝은 `게임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교육(gameplay based learning)`의 약자로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을 수업 도구로 활용해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게임 세계에서 소통하고 협력하며 공부하는 교육방법을 의미한다. 중앙대 위정현 교수(현 한국게임학회 회장)가 처음 제시한 이 G러닝은 2006년 당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G러닝은 중,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확대 적용됐고 정치, 수학, 영어 및 경영학 등 다양한 과목으로 확산됐다. 특히, 공교육을 중심으로 지평을 넓혀갔는데, 2010년 `G러닝 연구학교`에 전국 초, 중, 고 8개 학교가 참여했고, 2011년에는 경기도 62개 초등학교에 수학, 영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보급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쌓은 서비스 경험과 검증된 교육적 효과를 기반으로 2012년 미국 LA 초등학교에서 이뤄졌던 수학 수업을 효시로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세계로 확산됐다.

아쉽게도 교육적 효과가 높은 비대면 교육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G러닝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이상 명맥이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활하게 G러닝 서비스에는 게임콘텐츠 확보와 서비스에 필요한 유지보수, 그리고 게임 속 과제(퀘스트)의 정기적 업데이트 등 인프라 구축과 서비스에 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이 비용에 대해 게임개발사는 수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했고, 정부는 기존 사업의 유지보다는 새로운 사업 발굴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G러닝에 대한 지원을 점차 줄여갔다. 그렇게 G러닝은 점차 잊혀졌고 그 결과는 아쉬웠다. 그리고, 혁신적 교육방법 보존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던 정부는 COVID-19로 인해 비대면 교육을 강요받게 된 상황에 효율적로 대응할 수 있었던 카드를 땅에 묻어둔 셈이 되었다. 작년 초부터 비대면 교육에 필요한 인프라 및 서비스 구축에 급격하게 투입한 예산의 일부만 지원했어도 2020년은 G러닝의 해가 되지 않았을까? 원은석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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