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삭막한 일상과 팍팍한 하루하루를 꾸려가야 하는 땅의 사람들에게 하늘은 늘 꿈의 세계였던 것 같다.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행복한 세상이나 또는 그것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고, 과학에서는 해, 달, 별과 우주를 동경하고 고찰했다. 천문학 같은 순수과학이 추구하는 것은 단기간의 경제적 효과가 아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가지는 질문, 우주에 관한 인류의 궁금증에 과학으로 답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이다. 매일의 먹거리와는 거리가 있기에 가난한 나라보다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안정된 국가에서 발전해왔다. 지금은 천문학자의 수가 좀 늘었지만 필자가 학생일 때만 해도 아주 희귀했다. 그래서 기회 될 때마다 일반인들에게 천문학을 소개하고 망원경으로 천체를 보여 주는 것을 사명이자 기쁨으로 여겼다. 천문학과가 있는 대학이나 한국천문연구원은 매년 천문대 공개행사를 한다. 날이 맑기만 하면 저녁 무렵 망원경을 꺼내 놓고 관측을 시작하는데, 한밤중이 아니면 막상 볼 만한 천체가 별로 없다. 해는 너무 밝기도 하고 그냥 노란색 원반이라 밋밋하다. 개개의 별은 이 별을 보나 저 별을 보나 밝기만 다를 뿐 다 똑같아 보인다. 캄캄해지기 전에 그나마 볼 수 있는 것이 달과 행성이다. 행성은 공전주기가 다양해서 볼 수 있는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고 결국 가장 만만한 것이 달이다. 초저녁에 달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음력으로 7-8일, 오른쪽 절반이 보여 `상현달`이라 부르는 반달이 뜬다. 요즘 전국적으로 늘어난 시민천문대를 찾아가서 한 번 보시라. 추적을 끈 채 망원경으로 달을 보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엄청난 밝기, 그리고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달 상공을 날아가는 듯한!

달의 모양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주기를 한 `달`로 정하고 한 `해` 동안 해의 움직임에 따른 계절 변화를 대략 보름마다 넣은 24절기를 가진 음력 또는 태음태양력은 달력에 작은 숫자로 적혀 있다. 음력 1일부터 달이 커지기 시작해서 7-8일의 상현에는 오른쪽 절반이 보이는 반달(상현달)이 되고, 15일의 둥근 `보름달` 이후 달의 오른쪽부터 깎이다가, 22-23일의 하현에는 왼쪽 반이 보이는 `하현달`이 된다. 29-30일에는 달이 너무 작아지거나 보이지 않는 `그믐`이 된다. 상현달은 초저녁에 잘 보이고 보름달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밤새도록 보이는 반면 하현달은 자정쯤에 떠서 정오쯤에 지므로 아침에 잘 보인다.

음력 날짜만 보면 달의 모양과 언제 뜨고 언제 잘 보이는지를 알 수 있다. 24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맞춰져 있어 거의 일정한 양력 날짜에 돌아온다. 그래서 24절기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고 농사철을 가늠하는 데 이용한다. 2월 3-4일은 입춘, 3월 20-21일은 춘분, 6월 21-22일은 하지 하는 식이다. 며칠 후인 양력 2월 12일은 음력 1월 1일인 설날이고, 이 때부터가 소띠 해인 `신축년`이다. 2021년이 되면서부터 소띠 해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사실 설날 전날까지는 아직 경자년 쥐띠 해인 셈이다.

서양에서 유입된 문명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양력은 편리하다. 태양의 운동 하나만 고려했으니 단순하다. 반면 음력은 태양과 태음(달)의 운동을 모두 고려했기에 복잡하다. 복잡한 대신 달이든 해이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설계됐다. 우리 달력을 보면 해 때문에 생기는 계절뿐만 아니라 달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서양인보다 한국인이 훨씬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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