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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입춘

2021-02-03 기사
편집 2021-02-03 07:35:56
 김하영 기자
 halong071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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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잔 날/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한 방울/두 방울/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추녀 물을 세어본다/한 방울/또 한 방울/천원짜리 한 장 없이/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흘러가는 물방울에/봄이 잦아들었다.(박형진의 시 '입춘단상') 천원도 없이 한 계절을 견딘 이들에게 입춘의 햇살은 간절하기만 하다. 막막한 삶에도 어김없이 볕이 찾아들기를. 고달픈 기다림의 계절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맨 앞에 있다. 한자로 보면 봄으로 들어선다는 '入春'이 아니라 봄기운이 만들어진다는 '立春'이다. 예로부터 입춘이면 집집의 대문마다 흰 종이에 글을 써 붙인다. 대표적인 글귀로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 하라'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다. 대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건양다경(建陽多慶)과 함께 써 붙인다. 또 적선을 하면 한해의 액운을 막는다고 하여 이날 하루만은 남에게 몰래 공덕을 베푸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입춘적선공덕행(立春積善功德行)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입춘 전날에 콩을 뿌리며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가게 설 선물 코너에선 복콩(후쿠마메)을 판다. 대형 신사에서는 유명인이 던지는 콩을 받아먹는 행사가 열린다. 또한 길한 방향을 바라보며 김초밥인 '에호마키'를 먹거나 귀신이 싫어한다는 호랑가시나무와 정어리로 부적을 만드는 풍습도 있다. 중국에서는 '봄을 깨문다'는 의미의 교춘(咬春)을 먹는다.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채소들을 밀전병에 싸서 먹는데 무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봄을 말다'라는 뜻의 만두 종류인 춘쥐엔(春卷)을 즐기는 풍습은 화교권 전체에 걸쳐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봄을 기다리지만 이 무렵 추위는 매서웠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터진다'라는 말이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한파가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강추위가 다시 맹위를 떨친다. 매서운 칼바람에 체감 온도는 영하 15도 안팎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겨울 지나 봄이 오는 게 아니라 겨울 속에 봄이 움튼다고 하던가. 얼어붙은 땅일지라도 볕을 품는 한, 봄은 온다. 새봄의 생동하는 기운을 받아 모두 입춘대길하길 바란다. 김하영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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