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영 편집부 차장
김하영 편집부 차장
바람 잔 날/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한 방울/두 방울/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추녀 물을 세어본다/한 방울/또 한 방울/천원짜리 한 장 없이/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흘러가는 물방울에/봄이 잦아들었다.(박형진의 시 `입춘단상`) 천원도 없이 한 계절을 견딘 이들에게 입춘의 햇살은 간절하기만 하다. 막막한 삶에도 어김없이 볕이 찾아들기를. 고달픈 기다림의 계절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맨 앞에 있다. 한자로 보면 봄으로 들어선다는 `入春`이 아니라 봄기운이 만들어진다는 `立春`이다. 예로부터 입춘이면 집집의 대문마다 흰 종이에 글을 써 붙인다. 대표적인 글귀로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 하라`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다. 대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건양다경(建陽多慶)과 함께 써 붙인다. 또 적선을 하면 한해의 액운을 막는다고 하여 이날 하루만은 남에게 몰래 공덕을 베푸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입춘적선공덕행(立春積善功德行)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입춘 전날에 콩을 뿌리며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가게 설 선물 코너에선 복콩(후쿠마메)을 판다. 대형 신사에서는 유명인이 던지는 콩을 받아먹는 행사가 열린다. 또한 길한 방향을 바라보며 김초밥인 `에호마키`를 먹거나 귀신이 싫어한다는 호랑가시나무와 정어리로 부적을 만드는 풍습도 있다. 중국에서는 `봄을 깨문다`는 의미의 교춘(咬春)을 먹는다.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채소들을 밀전병에 싸서 먹는데 무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봄을 말다`라는 뜻의 만두 종류인 춘쥐엔(春卷)을 즐기는 풍습은 화교권 전체에 걸쳐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봄을 기다리지만 이 무렵 추위는 매서웠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터진다`라는 말이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한파가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강추위가 다시 맹위를 떨친다. 매서운 칼바람에 체감 온도는 영하 15도 안팎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겨울 지나 봄이 오는 게 아니라 겨울 속에 봄이 움튼다고 하던가. 얼어붙은 땅일지라도 볕을 품는 한, 봄은 온다. 새봄의 생동하는 기운을 받아 모두 입춘대길하길 바란다. 김하영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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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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