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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비수도권을 버릴 때

2021-01-26 기사
편집 2021-01-26 07: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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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지완 대전방송(TJB) 기획콘텐츠팀장
익숙하게 쓰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용어들이 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것은 광복 직후인 1949년이다. 돌이켜 보면 매우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조치였다. 문맹률이 높고 인구조사도 정확하지 않았을 혼란기였음에도 지역의 일꾼을 스스로 뽑게 한다는 취지는 매우 선진적(?)으로 여겨진다(물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향토자치성이 컸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강압적으로 지방자치를 폐기했고 35년이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도와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타이틀로 부활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이다.

그런데 이 부활은 온전한 부활이 아니었다. 지방자치행정의 주체를 '단체'로 규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방정부라 불러야 마땅할 개념이 (광역·기초)자치단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군부독재의 조치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명분과 중앙의 권력을 나눠주고 싶지 않은 정치적 욕심이 타협한 결과였다(남북 간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절에 북측의 연방제 통일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지방정치는 하찮고 부수적인 것으로 포지셔닝된 채 또 25년이 흘렀다.

법률 용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수도권, 비수도권의 구분이다. 일반적으로 수도권은 서울, 인천, 경기 지역을 뜻하고 비수도권은 그 외의 나머지 지역을 일컫는다. 권력분산과 지방자치의 관점에서 수도(首都)는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이 중앙정치의 수장이 일하는 곳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서글프고 비애롭다(혹자는 왕조시대의 유산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비수도권은 그 용어 안에 열등하다, 낙오되다, 후지다 등의 뉘앙스를 품고 있다. 모든 국민이 정치적 자기결정권과 지역적 자존감을 갖고 살려면 수도권, 비수도권이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해야 마땅하다.

세기가 바뀌고 경제는 급성장했다. 국민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정치 영역의 청렴도와 국민의 참여의식 등 전반적인 정치문화가 개선, 발전했지만 유독 지방정치·행정에 대한 의식은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지방의 혁신도시 지정 등으로 애쓰고는 있지만 분권은 지지부진하고 자치는 요원하다. 원인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정부'라는 용어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중앙정치인들의 집요한 욕심과 지역정가의 무능과 탈선, 지역언론의 책임 방기 등이 지방자치 미완성의 종범들이다. 무관심한 대다수의 지역민들도 마찬가지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되는 이 문제는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를 바꾸고 '수도권, 비수도권'라는 이분법을 폐기하는 운동에서 시작할 수 있다. 지방에 대한 중앙의 업신여김과 중앙에 대한 지방의 사대주의, 지방 스스로 느끼는 자격지심 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용어들을 바꾸는 것을 계기로 삶의 터전으로서의 지역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 풀뿌리가 잘게, 많이 퍼져야 풀의 생명력이 커진다. 잔뿌리를 쳐내는 방식으로는 물과 양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다.

이번에 작고 5주년을 맞는 신영복 선생은 '변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새로운 창조는 기득권인 '중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의 동인(動因)이 충분한 변방은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 새로운 시도는 콤플렉스가 없는 자유로움에서 비롯된다는 논리다. 대통령과 국회는 기득권에 대한 미련 때문에 절대 온전한 지방분권을 이루지 못한다. 그들에게 기대어서는 지방분권과 지역자치 실현은 지난 60년 동안 그랬듯이 늘 미봉책으로만 남을 뿐이다. 우리 지역에서부터 부적절 용어 퇴출, 부적합 용어 변경 운동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 이지완 대전방송(TJB) 기획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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