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나는 아직도 인기척이 없고 모든 것이 회색인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깹니다. 그러면 난 공포를, 목을 죄는 공포를 느낍니다. 삶에 대한 공포,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공포의 가장 무서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난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면 난 여러 개의 대답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생에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내 생명을 그저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참으로 살지 않았으리라는 공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속에는 무엇인지 모를 게 들어있어 나에게 말합니다. 너는 그곳에 도달하리라 라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난 그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도달하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발췌)

소설 생의 한가운데 중 여자 주인공 니나 부슈만의 편지 글중 일부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누구나 느껴봤을 삶에 대한 방황과 공포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정입니다. 2021년 겨울 우리는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창궐로 인하여 엄중하고도 냉혹한 시간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삶에서 견딜 수 없는 침잠의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않은 일상이 파괴된 시간 속에서 몸과 마음의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치유의 방법을 찾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친구도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나눌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갈 때 우리는 결국 자신만이 스스로 일어서고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희망의 길을 여는 것은 오직 자신뿐임을, 자신이 디디는 한걸음 일어섬이 오직 강한 힘을 발휘함을 알게 됩니다.

현실이 아득하고 막막할 때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마음 가는 예술가의 작품이나 그림에 관심 가져 보기를 권해 봅니다. 현실과 차원이 다르게 다양한 시선으로 표현한 작가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잠시 현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잊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고통을 현실의 눈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내 영혼의 활동과 차원이 다른 3차원, 때로는 4차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 위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표현해낸 그림 속 표현들은 차원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발상으로 다른 길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기억의 저편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삶의 자잘하고 소소한 풍경들을 현실로 꺼내와 예술가는 다양한 작품으로 우리를 위로합니다.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거움으로 웅크릴 때 일상에서 고요히 빛을 내고 있는 우리의 작은 소망과 희망들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만나면 살포시 미소를 짓게 됩니다. 그 모든 상상과 소망이 엉킨 삶의 조각들로 작가들은 그림을 통하여 마음의 허기를 끝없이 채워 줍니다. 지나오고 나아 갈 삶의 향기를 꺼내와서 끝없이 마음을 정화합니다. 길을 찾고 일어설 수 있도록 고통을 다독입니다. 때로는 삶의 정답 같은 것은 아예 없는지도 모르겠노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늘 예술가들의 작품은 그것을 향해 스스로 찾고 새로운 길을 향하여 나가는 따뜻한 등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열어놓은 그 통로를 따라가며 슬픔을 견디고 고통의 시간들을 일어섭니다. 그래서 그림은 때로는 치유의 힘으로 다가서고 사유의 공간을 열어주며 마음에 여유로운 틈을 내어줍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니나 뷰슈만이 진짜 공포스럽고 두려웠던 이유는 희망을 내려 놓는 것,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상실감 속에 사는 것, 절망과 고통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아니었을까요. 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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