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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부모의 자격

2021-01-18 기사
편집 2021-01-18 07: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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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하윤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삼국유사의 '손순매아(孫順埋兒)' 설화에 의하면, 손순은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아가면서도 노모를 봉양하는 효심이 극진했던 인물이다. 가난한 형편에다가 어린 아들이 늙으신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아내와 상의해 아들을 땅에 묻기로 결심한다. 아들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교외로 가서 아들을 묻으려고 땅을 파는데 돌로 만든 종이 나오자 기이한 생각이 들어 집에 가지고 와서 종을 쳐 봤다. 맑은 종소리가 궁궐에까지 전해져 흥덕왕이 그의 사연을 듣고는 효성을 치하해 집과 쌀을 하사했다. '명심보감'에도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하늘도 감동해 복을 받은 효자라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예부터 효를 절대적 가치로 여겨 온 우리 사회에서 효자를 다룬 이야기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손순의 효행을 교훈적 주제로 추켜세우며 어릴 때부터 배워왔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노모의 봉양을 위해서 자식을 땅에 묻는 행위를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가 노모를 향한 진정한 효행인지 물어야 할 것이고, 자식을 땅에 묻으려던 아버지는 죄가 없는지 따져야 할 것이다. 어린 아들도 노모에게는 귀여운 손자일 것이고, 매아(埋兒)의 행위를 노모가 원했을 리도 만무하다. 가난을 이겨내지 못한 아비의 무능함이 자식을 인신공희(人身供犧)해 살해하고자 한 것인데도, 이것이 부모에 대한 효행담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미화돼 내려온 것이다.

자식과 맞바꾼 효행으로 무엇을 전하고자 한 것일까. 고전은 우리에게 정신적·도덕적으로 훌륭한 유산을 물려주고 있으며, 본받고 이어나가야 할 가치들이 많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고전이 우리에게 항상 교훈적이고 긍정적인 덕목만을 전해주는 것은 아니므로 취사선별(取捨選別)하여 시대에 맞게 받아들이는 안목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래(古來)로 천륜과 패륜 운운하며 효를 절대적 가치로만 너무 띄우려다 보니, 무리하게 다른 도덕적 가치들의 손상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정인이 사건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동학대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건만, 이번에는 사뭇 여론의 체감온도도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千人所指, 無病而死)'고 했는데, 학대한 양부모는 손가락의 지탄(指彈)이 아니라 돌팔매질의 석탄(石彈)도 부족할 정도의 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한쪽에선 정인이에게 미안해하는 어른들의 추모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영하의 추운 거리를 배회하는 제2, 제3의 정인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부모들의 항변은 항상 똑같다. 아이가 말을 안 듣고 버릇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훈육차원의 교육이라고 한다. 훈육과 체벌의 모호한 기준은 차치하고라도 중요한 사실은 자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기준과 가치관대로 맞춰야 하는 소유의 대상도 아닐뿐더러 부모라는 허울 아래 행해지는 폭력의 대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많은 부모들은 간과하고 있다.

'부모'라는 이름은 자식에 대한 책무가 주어진 거룩한 명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부모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저출산의 현상으로 출산만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가 인격적으로 부족한 부모들을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부모다운 부모를 양성하기 위한 부모수업 교육도 필요하고, 부모의 인식개선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도 필요할 것이다. 아이의 성장만큼 부모도 아이를 통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 부모의 양성을 위해서는 나라 전체의 관심도 필요할'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은' 사람이 아니라 자식과 함께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김하윤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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