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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초현실주의, 큐비즘, 그리고 재즈

2021-01-12 기사
편집 2021-01-12 07: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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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드디어 2021 새해가 밝았다. 2020년은 정말 초현실적인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초현실" 하니까 생각나는 것은 20세기 초 미술계를 주름잡았던 "초현실주의(Surrealism)가 생각난다. 이 초현실주의는 앙드레 브레통(1896-1966년)에 의해 주창되고 발전된 예술사조인데, 소위 자동기술법(automatism)라 불리는 기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자동기술법은 인간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면서 특히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를 구성하는 방법인데, 사실은 무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며 자동적으로 솟아나는 시상을 시언어로 기록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앙드레 브레통을 비롯한 초현실주의 문학가들은 당시 아프리카 미술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20세기 초 하나의 문화 트렌드였는데, 그 이유는 우선 2차 세계대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우선 이성주의의 몰락이다. 16세기 데카르트(1596-1650년)로부터 출발한 합리주의 장밋빛 미래는 야만적인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모두 황폐화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합리주의적 세계관이 보여 주었던 보장된 미래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전쟁의 포악함만이 유럽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는 많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아프리카 미술과 같은 비이성적인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게 했다.

아프리카 미술은 우선 유럽 화단이 중시했던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원근법이 없었다. 한마디로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처럼 들쭉날쭉이지만 유럽 미술이 가지지 못한 묘한 매력이 있다. 이러한 매력에 매료된 일군의 화가들이 또 있었는데 그들은 입체주의 화가들이란 불린다. 유명한 입체파 화가 중의 한사람인 피카소(1881-1973년)의 그림을 보면 원근법이 없다. 때로는 가까이 있는 물건이 뒤에 있는 것보다 더 작게 그리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원근에 대한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탈원근법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화풍은 이전의 회화가 가지지 못한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원근법만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일관된 화가의 관찰 방향도 사라진다. 즉 눈 위에 코를 그리기도 하고, 뒤통수에 입술을 그리기도 한다. 얼굴의 옆 모습과 앞모습을 함께 그리기도 한다. 왜 이렇게 그림을 그렸을까? 그것은 피카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었다. 사물을 마치 카메라가 바라보듯이 관찰하고 사진 찍듯이 캠버스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바라보는 내면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피카소에게 앞서 이야기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 진력이 나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세상을 비이성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끌렸던 것이다. 합리주의가 당시 유럽인들에게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피카소의 그림은 강렬한 색체와 탈원근법적인 윤곽으로 마치 아프리카인들의 그림처럼 보인다. 그것은 당시 유럽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프리카의 비이성적 예술관은 시와 그림에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적 감성을 서양인들의 음악과 접목시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재즈이다. 재즈는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처럼 무의식 흐름을 따라가면 즉흥적으로 음악을 토해낸다. 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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