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삼키며 가게 문 닫고, 생산설비 전면 중단 등 시련 듬뿍 준 '2020년'

[그래픽=대전일보DB·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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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네일숍 사장 이정미(37) 씨는 올해 4월 10일 가게를 접으며 혼자 울음을 삼켰다. 배운 게 네일 뿐인데 이젠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까마득했다.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두 아들이 놀랄까 앞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독였다. 점포를 인수하겠다는 임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네일 물품 재고와 집기류를 그대로 떠안은 채 눈물로 문을 닫았다. 창업한 지 딱 6년 만이다. 30일 만난 정미 씨는 "그땐 삶이 너무 막막해 짐을 싸며 한참을 울었다"고 또 눈시울을 적셨다.

코로나19 쇼크로 시작된 2020년 한해가 코로나19 대유행 한파로 저물고 있다. 다른 나라 일인 줄만 알았던 코로나19가 올 초 국내에 상륙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경기는 급격히 얼어붙었고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정미 씨가 대전 서구 한 동네에 네일숍을 차린 건 2014년 4월이었다. 채 20평이 안 되는 56㎡ 작은 점포에 직원 1명을 둘 정도로 벌이는 괜찮았다. 한 달에 1000만 원 가까이 매출을 올린 적도 있다. 네일 기본이 3만 원 수준이니 쏠쏠한 장사다. 직원 월급 주고 임대료 내면서 아이들 성장을 지켜보는 특별할 것 없고 소소하며 안온한 일상이었다.

위기는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2020년 새해의 설렘이 가시기도 전인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뒤 정부의 감염병 위기경보는 `경계`로 상향되고 2월 19일 대구에서 특정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속출했다. 코로나19 전염 공포는 실제 감염보다 막강한 것이었다. 정미 씨는 "네일 케어라는 특성상 손님과 무릎을 대고 가까이 앉아 손을 만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코로나 시국에 네일숍에 오겠느냐"며 "코로나 환자가 많이 나온 2월부터 바로 손님이 80-90% 줄었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폐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이 코로나19 여파로 폐업까지 했다는 딱한 사정을 파악한 대전 서구에서 손을 내밀어 정미 씨는 7월부터 사회복지과 자활지원팀 소속 기간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정미 씨는 "폐업 후 아이들 뒷바라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대전의 한 구청 사회복지공무원이 찾아와 많은 도움을 줬고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기간제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됐다"며 "지금은 나처럼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규 사회복지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겨 공부도 시작했다. 올 한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코로나발(發) 시련은 소상공인뿐 아니라 지역 대표기업인 맥키스컴퍼니마저 휘청이게 했다. 대전·충청권 대표소주 `이제우린`을 만드는 공장은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생산설비 가동을 전면 중단한데 이어 3월 한 달 동안 매주 이틀만 생산라인을 돌렸다. 1973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바깥활동이 크게 줄면서 2019년 대비 매출액은 30%가량 잘려나갔다. 맥키스컴퍼니 영업사원 이장석(35) 씨는 "코로나가 터지자 일부 업주들은 주류회사 영업사원들의 활동반경이 넓다며 방문 자체를 꺼려하고 업소 밖에서 판촉물만 받고 못 들어오게 하는 곳도 있었다. 지난 8년 영업직 근무를 돌이켜보면 올해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올해 수능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은 초유의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을 오가는 혼란 속에 바이러스 감염 우려까지 이겨내야 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권 모(18) 군은 "고3이라는 부담에 코로나가 발발해 일일이 말하기 힘든 제약과 차단의 현실을 경험했다. 현재 고3보다 재수생이나 n수생이 시험준비에 더 유리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해 자신감도 떨어졌다"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괴물이 언제 종지부를 찍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수능은 치러졌고 결과는 나왔다. 올 한 해는 나쁜 꿈을 꾸듯 지나가 버렸다"고 말했다.

20학번 대학 새내기는 `캠퍼스`가 아닌 `집콕`을 강요 받았다. 올해 한국기술교육대에 입학한 이서준(20) 씨는 "힘겨운 고3 생활을 끝내고 대학에 합격해 새로 만날 친구들과 캠퍼스를 누비는 상상을 했었는데 코로나19로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면서 "인생에 한번인 새내기 시절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 모든 것이 실망스럽고 원망스러웠지만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지역사회 코로나19 대응과 방역을 총괄하는 정해교 대전시 보건복지국장은 "코로나 창궐 이후 월화수목금금금 오전 6시 출근해 밤 10시에 겨우 퇴근하는 비상근무가 수개월째 이어지며 직원들의 피로도가 한계에 몰리고 있다"면서도 "올해 150만 모든 시민들이 어렵고 힘든 1년을 견뎌주었듯 시·구청 등 공직자들도 방역업무에 더 매진해 과거의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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