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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송구영신(送舊迎新)

2020-12-31 기사
편집 2020-12-31 0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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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창덕 신부·천주교 대전교구 원로사목자

"빛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필요하고 소리를 들으려면 귀가 있어야 돼. 그런데 시간을 느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나? 그래, 그건 마음이야 마음이란 것이 없어 시간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그 시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이것은 미카엘 엔데의 동화 '모모'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시간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은 이 인생의 시계가 꼭 한 번의 태엽이 감겨있으므로, 동일한 순간과 똑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 없음도 느끼고 있다. 이제 2020년 경자(庚子)년은 시간 안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참으로 어려웠던 한 해를 경건하게 마무리하는 이 시간에도, 경제적으로 도약을 다짐했던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정치의 파행이 여전히 낯설지 않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회와 문화의 질곡 속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끔찍한 질병 앞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연련한 삶을 가꾸기 위해 노력했던 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석양의 고운 그림자처럼 우리 마음에서 흐르게 하자. 그래야 한 해가 문이 닫혀도, 해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목적지를 향해 희망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출발 선상에서 창조주의 2021년을 향한 신호를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힘들었던 만큼 감사할 일이 많음을 기억하자. 일용할 양식과 비바람을 막아주는 집이 있음을, 친절과 미소로 세상을 꾸며 온기로 세상을 덮여준 이웃들, 특히 헌신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께 감사하자.

이제 용서를 청하며 한 해를 보내야한다. 타인으로부터 겪은 작은 불의를 용서하는데 인색하였음을, 무관심으로 이웃의 아픔을 흘려버리고, 위로와 격려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그저 지켜만 본 점을 용서 청하자. 감정을 여과하지 못해 알게 모르게 이웃에게 상처를 줬던 점들을 성찰하자.

방울뱀이 다른 방울뱀과 싸울 때는 독이 나오는 송곳니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자와 늑대도 주도권 쟁탈을 위해서 싸우지만 서로 죽이는 것은 피한다. 인간은 짐승도 피하는 것을 선택하며 상대의 아프고도 약한 부분을 공격한다. 우리는 배워야한다. 이데올로기보다 자유가 낫다는 것과 자원보다 두뇌가 낫다는 것, 그리고 대립보다 공존이 낫다는 것을 깨닫자. 그리고 새해에 평화와 희망을 노래하자.

불후의 명작 '신곡'을 쓴 단테는 슬픔과 실망을 안고 파리에 갔을 때 폭풍우가 사납게 휘몰아치는 밤이었다. 산타크로체에 있는 어느 수도원의 문을 두드릴 때 한 수사가 나와 단테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엇을 구하러 왔소?" 단테는 문득 속에 담고 있는 말로 '평화'하고 외쳤다. 연인이던 베아트리체의 죽음, 정치적인 이유로 정들었던 플로렌스에서 추방돼 방랑의 세월 속에서 고독·불안·낙담만이 그의 벗이었으니 이런 외침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단테는 수도원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신곡을 집필했고, 신곡은 불행의 터널을 통해서 가파른 길로 평화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새해 이제 우리는 또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희망을 갖는 사람은 그 희망이 어떻게 이뤄질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고, 암흑 속에서도 계속 움직이는 것이며, 그 희망이 이뤄지리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희망은 잠들었다가 해가 뜨면 다시 깨어나는 것이다.

"주님, 새해에는 이 해의 많은 그늘을 밝혀주십시오. 모든 아픔은 떠나는 해에 묻고, 새해에는 우리가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평화롭게 하는 도구가 되게 해주십시오. 2020년 경자(庚子)년 한 해의 문은 우리가 닫겠습니다. 그러니 2021년 신축(辛丑)년의 한 해를 밝게 열어주십시오." 이창덕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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