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선임들은 신입들을 식당 주차장에 모아놓고 기강을 잡는다고 얼차려를 주었습니다. 머리박기를 시키고 쓰러지면 발로 머리를 밟기까지 했습니다. "너희들이 일을 제대로 못해서 위로부터 한소리 들었다"며 집단 폭행까지 이어졌습니다. 동준이는 "내가 일하러 왔지 얻어맞으러 온 거 아니다. 때리지 말라"고 항의를 했지만, 뺨까지 맞는 사태로 일은 더 커져 버렸고, "윗선과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보고하겠다"라고 이야기했는데…그 말이 폭행한 선임들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밖에 알리면 너 죽여 버린다. 내 친구들 중에 주먹 쓰는 어깨들 조폭 형님들 많다"라고 협박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볼 수 없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증언이다.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 꿨던 김동준 군은 마이스터고 3학년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CJ그룹의 진천 육가공 공장에서 일했다. 장시간 노동과 작업장 폭력에 시달리다가 2014년 1월 20일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했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동준 군이 생애 마지막 전 날 쓴 트위터 글이다.

2017년 11월 19일 제주의 생수공장에서는 현장실습생 이민호 군이 적재프레스에 몸이 끼어 숨졌다. 열악한 노동여건은 민호군에게도 죽음을 예감케 했을까. "내가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모르고 내가 일하는 데 자체가 위험한 데여서 돈을 어느 정도는 남겨둬야 후환이 안 두려움." 2017년 8월 13일 민호 군이 친구에게 보낸 카톡이다. 같은 해 1월 통신업체 고객서비스센터 해지방어팀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전주의 특성화고 3학년 홍수연 양이 자살했다. 수연 양이 속한 팀은 일명 `욕받이 부서`. 수연 양이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콜수 못채웠어"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아픔의 질량은 동등하지 않다.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우리 사회 폭력성은 아픈 손가락을 `없는 손가락`으로 여기는 데에서 발생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순탄치 않은 것처럼. "우리들이 저지른 잘못들이 저기, 우리보다 먼저 미래로 가서 자욱하다"(이문재).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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