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이맘 때면 늘 하는 말이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아마도 올해처럼 이 표현이 실감나는 때가 우리 생애에 다시 있을까. 새해 초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괴물이 있다. 코로나19 ! 선진국, 강대국할 것 없이 온 세상을 공포와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다.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만이 남아 있다. 일부 국가에서 백신이 개발되고,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언제? 그래도 우리에게는 꿈이 있다. 이 또한 끝나리라는 꿈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 이 표현은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행진 때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행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서 이 코로나19가 끝나서 사회적 거리두기만큼 멀어져 가는 사람 간의 관계가 다시 회복됐으면 좋겠다. `나이 드신 부모님 댁에도 찾아가지 말라`는 방역당국의 절규(?)까지 나오는 이 불편한 상황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이 코로나19를 잘 견디고 건강하게 일상의 소확행(小確幸)을 누리면서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꿈이다. 불규칙한 생활 습관에서 빨리 벗어나 친구들과 자주 직접 만날 수 있기를. 캠퍼스를 마음껏 거닐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싱그러움을 한껏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 24시간, 거의 365일에 걸쳐 다 큰 아이들과 더불어 세끼 식사와 뒷바라지에 지쳐있는 아내에게 평범한 일상을 돌려줬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직장 직원들이 일상의 평범한 세상에서 마음껏 조사, 연구하는 날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꿈이다. 원치 않는 격리와 이동제한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 직원 간에 배려와 존중이 제일 덕목이 돼 `갑질`, `인격모독` 등 우리 사회에 점점 늘어가는 문제가 우리 직장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동료의 기쁨과 슬픔이 먼 산 너머 불구경이 아닌 건전한 동료애로 승화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공동체가 됐으면 하는 꿈이다. 꼼수와 편법, 약육강식을 기반으로 한 승자의 합리화가 보편적인 가치기준으로 포장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과 규정을 지킨 이가 손해 보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법의 적용과 판단, 분배와 평가, 상벌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사회가 됐으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나 고무줄로 만든 잣대가 우리 사회를 재는 척(尺)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남과 북의 연구자들이 함께 대동강변에서 고구려유적을 조사하고, 경주 대릉원에서 신라 유적과 우리 역사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이다. 30년 전 난생 처음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긴장과 설렘, 개성 만월대에서 남과 북이 함께 조사하던 당시의 기대감은 언제 다시 이어질 수 있을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목청껏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별, 피부색, 종교, 사상, 계급, 빈부의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지구촌이 되기를 바라는 꿈이다. 인신매매, 학살, 마녀사냥, 인종차별 등 세계사에 남겨진 수많은 얼룩들이 아직도 세상 도처에 존재한다는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코로나19 백신의 접종이 시작된 지금 세상은 또 다른 차이와 차별을 보여주는 듯해 안타깝다. 코로나19는 세상을 그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나누는 엄청난 전환점이 될 듯 싶다.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꿈이 우리에게 있다. 아마도 그 꿈은 실현될 것이다. 지난 몇 만 년 동안의 모습으로 볼 때, 지구상에서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생명체는 인간이었으니까.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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