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사람인지라 자식이 성장하면서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고 점차 소원해지는 것에 아파한다. 꼭 무엇인가 대가를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편하게 만나기 어려운 상황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하여 가장 친한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사람끼리 가족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려면 예(禮)의 원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禮)의 원칙과 세부 예절 및 예의 근본정신을 기록한 예기(禮記)와 예식이나 행사의 몸가짐에 대한 예절을 기록한 곡례(曲禮)를 보면 예는 기본적으로 서로 혜택을 누리게 되는 성질 즉 호혜성(互惠性)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는 오고 가는 호혜성을 높이 친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여기서 오고 가는 것은 보통 사람들 사이처럼 물질만을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방문, 전화, 청소, 간호, 일손 거들기, 식사 같이하기, 가족여행 등의 관심을 포함한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지 않을 경우 부모가 자식에 전화를 걸면 자식도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꼭 무슨 이유나 소식이 없더라도 전화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급 식당이나 맛있는 요리가 아니어도 좋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발견하면 그것을 가져다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있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늘 함께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서로를 동반자로 배려하는 자세이다.
우리는 국어, 수학, 과학, 외국어 등 기초 기본이 되는 영역과 전문영역을 배운다. 하지만 사람 사이를 유지하는 삶의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 배우지 않다보니 같은 공간에서 누구랑 함께 있으면 불편하게 느낀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일방적으로 주려고만 하고 받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려는 자세를 돌아봐야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사랑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고가는 관심 속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 아울러 보통 사이는 주고받는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가족 사이는 좀 더 긴 시간에서 서로를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상왕래를 통해 서로를 배려하는 삶의 기술을 돌아보면 좋겠다. 사람이 예를 모른다면 비록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이 짐승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예를 만들고 예를 실천하며 사람들을 가르쳐, 사람이 예를 갖추도록 하여 자신이 짐승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했다. 정진성 생활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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