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적극적인 방역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확진자도 1000명을 넘어서며 심상치 않은 상황이 도래했다. 식당이나 카페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생계가 어려워진 지 오래다. 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던 인기 식당마저 하나둘 배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경제 생태계가 급속히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다른 나라에 비해 초기대응은 뛰어났지만 조그마한 방심이 사태를 키운 느낌이다.

필자가 일하는 원자력 분야 또한 현재 겪고 있는 위기의 근원이 조그마한 방심이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겹쳐진다. 원자력계는 기술 자립에 앞장서며 국가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보의 개방과 공유가 사회 발전을 이끄는 `열린사회`로의 변화에서 가장 핵심인 소통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미흡하게 대처했다. 현재 원자력계의 가장 큰 현안이자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도 소통에 막혀 진척이 더디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도 안면도, 굴업도, 부안 사태 등을 거치며 간신히 경주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원자력계는 지난 경험을 반면교사로 국민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가치로 두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쉽게 진행되리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원전에 비해 우리 원전은 훨씬 안전하다는 말과 여러 안전 시스템을 강화하며 국민들을 안심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러한 일방적인 조치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날 원자력의 위기는 안전의 혁신과 함께 `생각의 혁신`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원자력 안전은 이제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국민이 안전하다고 받아들이는 `안심` 수준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이는 소통의 과정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소비자가 믿고 찾지 않으면 폐기돼 버리듯, 국민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원자력 역시 쓸모없게 된다. 원자력 전문가들이야 서운하겠지만, 현재의 위기는 원자력계가 그동안 소통에 소홀한 채 정책 입안자와 전문가 중심으로만 움직였던 후유증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기 대응이 미흡하면 수습도 어렵고, 후유증도 크듯 소통에 소홀했던 대가라 생각하고 감내해야 한다. 다행히 원자력연구원을 포함한 원자력계는 새로운 각오로 국민들 안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안전한 기술개발과 철저한 검증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국민의 얘기를 듣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다양한 음표과 쉼표가 뒤섞여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지듯이 최고의 기술에 `소통과 공감`이 더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부쩍 위기를 논하는 대덕연구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역대 정부의 과학기술 집중 육성 정책 덕분에 급격히 발전했지만, 이에 방심한 나머지 스스로의 성장동력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이젠 새로운 긴장과 성장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말에 인근 세종시에 개원한 국립수목원에 갈 기회가 생겼다. 관람객들 모두가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대형 온실이 잘 꾸며져서인지, 비가 오고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활력이 느껴졌다. 포토존까지 오밀조밀 잘 꾸며진 수목원이 가족과 연인들을 끌어모으니, 인근에 전망 좋고 깔끔한 식당, 카페들까지 함께 들어서며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대덕연구단지 인근 도룡동에 새로 들어서는 사이언스콤플렉스와 트램도 이처럼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대덕연구단지의 관문인 도룡동에 오랜 시간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는 공동관리아파트, 목원대 대덕문화센터도 새롭게 변모해 예전의 활력을 되찾길 바란다. 대전은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 도시이다. 과학 도시의 중심축인 대덕연구단지가 새롭게 재정비돼 대전시가 다른 어느 도시보다 더 나은, 더 행복한 삶터로 재도약하길 기대한다.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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