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미 아동문학가
현경미 아동문학가
언젠가 덴마크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휘게 라이프`라는 걸 접하게 됐다. 이는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를 추구하는 덴마크의 라이프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확행`과 비슷한 의미였다. `소확행`은 몇 해 전부터 우리 생활 저변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사회, 경제, 마케팅 전략 등 여러 영역에 적용되기도 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어느 수필집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그리고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 등 행복이라고 정의한 것은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가져다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나는 이사를 꿈꾸며 부동산이나 그곳에서 알려준 정보를 따라 집을 보러 다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몰랐으나 장성하고 보니 비좁기도 하고 20년 넘게 한 곳에서 살다 보니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다. 결국은 지금 집에 눌러앉기로 했다. 주변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분양가는 물론 웬만한 집도 상상 이상으로 값이 올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발 빠르게 아파트를 옮기면서 재산증식의 기회로 삼은 지인들을 볼 때면 바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보니 그렇고 지금은 현실상황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이사는 잠시 접어야만 했다. 결국 집을 바꾸는 대신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이곳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또 코로나19 여파로 모이기를 금하고 모여서도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둘러앉아 수다 떨기로 스트레스를 풀던 모임은 유물 같다. 중학교에 근무 중인 나는 올해 1학년과는 서로 얼굴도 잘 모른다.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져서다. 영화에서 보던 재난이 실제 삶이 되고 보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는 각자가 가진 어려움들을 견디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며 견디고 있다. 행복학교를 꿈꾸지만, 행복이 보류된 상태로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덴마크의 `휘게(hygge)`와 `소확행(小確幸)`은 그 의미가 비슷하다. 하지만 추구하게 된 동기나 배경이 달라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은 휘게와는 달리 어딘가 모르는 쓸쓸함이 베여있다. 행복은 그 어느 때, 어느 상황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집을 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코로나19 여파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고 할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 또한 행복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감사해하기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내리기도 한다. 전화로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영화를 다운받아 보기도 한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가꾸려는 저편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불안들은 어찌해야만 할지. 코로나19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우리를 엄습해오고 있다. 미래라는 시간 속에 우리가 진정 바라는 안락함과 평안함과의 접점이 있기는 할는지. 휘게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공간이라고 했으며 그 기본이 집 일진데, 집 걱정 없는 내일이 올 거라고 믿어 볼 수밖에 없다.

어느 드라마에서 치매에 걸린 주인공의 말이 생각난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노라고. 불안한 미래 때문에 오늘을 망치지 말라고.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가세요."라며 해맑게 웃던 할머니의 표정이 떠오른다. 우리들이 마주한 불안한 오늘을 각자는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또 어떻게 걸어가야만 할까. 살아야만 해서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이어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형 소확행, 그 너머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현경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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