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63년 9월 26일 당시 서산군 인지면 모월리에서 얼굴도 모르는 남녀 125쌍의 합동결혼을 강제로 시켰다.사진=대전일보 DB
정부는 1963년 9월 26일 당시 서산군 인지면 모월리에서 얼굴도 모르는 남녀 125쌍의 합동결혼을 강제로 시켰다.사진=대전일보 DB
[서산]강제 노역과 인권유린 등 국가 폭력이 자행된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 불린 일명 `서산개척단` 사건이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출범에 따라 진실규명을 통한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게 됐다.

13일 시에 따르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10일부터 시행과 동시에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 2022년 12월 9일까지 과거사 진실규명 신청서를 자치행정과에서 접수한다. 서산개척단 사건도 진실규명 대상이다.

서산개척단은 5·16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갱생의 기회를 준다`며 우범자, 출감자, 윤락녀 등을 사회로부터 강제로 치우는 사회명랑화사업으로 시작됐다. 1961년부터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로 잡혀온 이들이 1700여명이 넘는다. 초기엔 거처가 없어 야산에 땅굴을 파거나 천막을 치고 1년 정도 살았고, 이후 강제 수용소인 `형설촌`이 생겼다.

정부는 이들에게 바닷물이 드나드는 폐염전을 농지로 개간하는 일을 시켰다. 비탈진 야산을 삽과 곡괭이로 파헤치고, 지게가 없어 등으로 돌과 바위를 날라 갯벌을 손수레와 삽으로 평탄하게 만들어 농지를 한 뼘 한 뼘씩 일궈나갔다. 1961년부터 공식 해체된 1966년까지 5년 간 이들은 농지와 웅덩이, 도로, 수로 등 321㏊를 개간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감시원의 눈을 피해 도망가다 걸려 맞아죽기도 하고,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비해 먹는 것이 빈약해 병에 걸려죽거나 영양실조로 죽는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수백 명이 이곳에서 죽어나갔다. 정부는 강제로 잡아온 여성들을 단원들과 서산·서울에서 350쌍을 강제 결혼까지 시켰다.

정부는 서산개척단원들에게 농지 무상분배를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정영철 서산개척단진상규명대책위원장은 "현재 모월리는 서산개척단원 15명이 생존해 있고, 연락이 닿은 서산개척단원까지 하면 50여명이 된다"며 "이들의 뜻을 모아 조만간 서산개척단진상규명대책위원회 명으로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 명예회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관희·박계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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