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인정 민감한 사안
과거와 절연 못하면 미래 없어
당내 반발 여전 사과 수준 관심

김시헌 논설실장
김시헌 논설실장
9일 유력시됐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대국민 사과가 돌연 연기됐다. 공수처법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법안 등에 대한 민주당의 단독처리 등으로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때가 아니라고 본 듯하다. 사과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다시 택일을 하겠다는데 아마도 그 시간이 그렇게 길어질 것 같지는 않다. 김 위원장이 당내 일부 반발에 비대위원장 직까지 거론하며 사과를 하겠다는 뜻을 굳힌 이상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두 전직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 등 과오에 대한 사과는 국민의힘으로부터 멀어진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통해 과거의 잘못과 절연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의 판단은 꽤나 현실적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과를 하겠다는 용기도 높이 살 만하다. 2016년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의결일로부터 4주년이 지난 어제를 디데이로 잡았던 것은 정치적 감각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 사과는 국민의힘에 있어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당내 계파 갈등을 촉발할 위험부담은 물론 보수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도 내재해 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이 과연 사과의 주체로서 적격인지, 당사자인 두 전직 대통령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사과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확대 재생산할 요소도 다분하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연기가 과연 소란스러운 정국 탓 만일까라는 궁금증을 남긴다.

이런 논란 속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 수준은 다소 제한될 소지도 엿보인다. 그의 발목을 잡는 저항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일단 사과는 당사자들이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암묵적 동의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전직 대통령은 사과를 할 뜻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사과냐는 것이다. 한 사람은 재판도 거부하는 등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맞서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사과를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여전히 뻣뻣한데 그 진정성이 통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이 사과 주체로서 적격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총선 패배 등으로 풍비박산난 당을 수습하기 위한 구원투수일 뿐 당을 대표하는 인물도, 정통성도 없다고 폄하하는 이들이 엄존한다. 그런 그가 당의 총의도 모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과를 강행하면 단순히 정치적 퍼포먼스에 그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진정으로 국민의힘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통찰을 하려면 두 전직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호가호위했던 측근들도 함께 나서야 하지만 뒤에서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의 사과를 국민들이 납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용이 중요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국정농단과 횡령, 뇌물 수수 등으로 헌법가치를 훼손하면서 국격은 땅으로 떨어졌다. 이를 방조한 당의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 김 위원장의 사과는 이를 총망라해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벌써 당내 중진들의 반발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하는 `대리 사과`가 아닌 단순 사과로 그칠 것이란 관측도 무성하다.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변하려면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탄핵 4년이 지나도록 책임지고 사과하는 사람 하나 없는 당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할뿐더러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진정한 사과는 당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그런 믿음으로 당 구성원을 설득하고 사과에 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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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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