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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랑] 식물의 시간

2020-12-08 기사
편집 2020-12-08 0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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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지혜 한밭수목원 연구사
식물은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식물이 뚜렷한 시간의식을 갖는 것은 불확실하지만 꼭 필요하기에 참고, 기다리며, 성장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잎을 떨군 나무에서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겨울눈에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인내와 새봄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

식물은 봄부터 가을에 걸쳐 잎이 떨어진 자리, 줄기나 가지 끝에 내년을 책임질 겨울눈을 만든다. 꽃과 잎이 되는 이 작은 생명기관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무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목련의 겨울눈은 따뜻한 모자를 쓴 듯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다.

식물은 그냥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게 아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묵묵히 약속의 봄을 준비하기에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 해마다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꽃을 피워내는 식물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작년에 핀 꽃과 같은 꽃은 결코 다시 피지 않는다.

이번만을 위해 피는 꽃과 잎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다. 식물에게 화려한 꽃과 풍성한 잎, 탐스러운 열매가 없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겨울이라고 해서 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겨울은 식물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도하지 않는 것이며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갇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는 또 다른 시작의 시간, 식물이 겨울을 보내는 시간이 그러하다. 우리의 삶도, 일도 식물과 닮아있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으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식물은 차분히 겨울의 시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기를 보내는 식물은 당신에게 말을 걸고 인사를 하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조용히 기다림의 시간을 보여준다.

겨울숲은 푸르름에 가려져있던 것을 단순한 시선으로 보게 한다. 텁텁하고 숨막혀하는 우리에게 숨을 트여준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열정을 다해 맡은 바 일을 해내는 일상에 힘을 준다. 지금 우리에게도 식물의 시간이 필요하다. 참고 기다리며 성장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져보자. 이지혜 한밭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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