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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자기 운행

2020-12-04기사 편집 2020-12-04 07: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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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캐리리 작가

밤의 빛 속에는 빛나는 것들이 있다. 고요한 거리 위로 드문드문 가로등 빛이 쏟아지고, 창을 넘어온 빛들은 물결처럼 출렁인다. 어느새 밤의 세계가 빛나는 것들로 충만하게 차오르면 현재의 희망이 축소되거나 과거의 절망이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며 잠이 든다. 그리고 아침에 나는,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힌 채 하루의 문을 다시 연다. 뒤죽박죽 돼버린 불안전한 기분을 점검하고, 불규칙하게 놓인 일상의 운행표를 살피며 하루의 시작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날마다 긴장되는 예술가의 흔한 아침이다.

사실 예술가의 일상적인 문제들은 창작세계의 내부가 아닌 그 외부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술가 대부분이 작업 방식이나 재료 연구를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품 창작을 위한 시간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 말도 틀리진 않다. 하지만 내 경우엔 단순히 예술창작 그 자체보다는 예술과 관련된 업무들이 훨씬 많다. 한 달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은 고작 14~15일 정도이고 나머지 15여 일은 불가피하게 전시에 필요한 문서작성이나 작업실 청소, 강의 등과 같은 일로 소모되고 있다. 작가로 평생을 살기 위해서는 작업으로 생계가 가능해야만 하는데, 예술 분야에서 이른 시기에 큰 성공을 얻기란 쉽지 않다. 해서 많은 작가들은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부업으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나 역시 대학교 강의를 하며 삶의 '불안정한 경제'와 '확고한 신념' 간의 조화를 맞춰간다.

그래야만 작업에서의 독립성과 순수성을 지키며 작업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 매달 작품 판매에 대한 수입을 얻기 위해 억지로 작품을 만들어 낼 필요도 상업적 타협을 두고 고민하거나 합리화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유지하는 동시에 작업에 몰두하는 행위는 예상외로 안정적이며 즐겁다. 결국에는 근본적으로 예술가들 스스로가 창작 활동을 지속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중지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빛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길일지라도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의 운행처럼 독립적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며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다. 캐리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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