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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응접실] "오른손 한 일 왼손도 알게…나눔문화 확산 절실"

2020-12-01기사 편집 2020-12-01 16:47:45      김동희 기자 innovation86@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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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희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첨부사진1정태희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기부나 나눔 등 좋은 일은 남모르게 살짝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성경의 마태복음 6장 3절에 따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을 당연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과거에 일반화됐던 나눔에 대한 미덕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는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왼손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옛이야기고, 지금은 왼손도 알고 세상 사람이 다 알게 해서 다른 사람들도 좋은 일에 동참 시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 코로나19와 수재 등 악재가 겹치며 곳곳에서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나눔활동과 미담들을 널리 알려서 기부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인에서 지역의 나눔문화를 선도하는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 동분서주하는 정태희(63) 회장의 생각이다. 지난 30일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정 회장으로부터 따뜻한 대전을 만들기 위한 나눔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3월 취임한 정태희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코로나19 여파로 정신이 없었다. 업무 파악도 안 된 시점에서 여기저기 모금회 행사에 참여하기 바빴고, 여름에는 수재가 60여 일 가까이 지속되면서 정신 없는 한 해를 보냈다. 설상가상 회사는 회사대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진으로서 경영도 신경 써야 했다. 모금회 활동과 회사 경영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개인 시간을 뒤로한 채 속된 말로 오줌 똥 못 가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력했다. 너무 무리한 나머지 지난 4월과 5월에는 대상포진에 걸려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올해는 첫 임기를 시작하는 해로 다른 건 못하더라도 외연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 정 회장은 "안기호 前 회장이 6년 동안 모금회를 훌륭하게 잘 이끌어 오셨기 때문에 최소한 거기에 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며 "모금회 직원들이 행복해야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직원들이 중앙회에 못하는 얘기를 직접 전달하고, 밖에 나가서는 모금활동에 힘을 쏟았다. 지금도 시간이 나는 대로 나눔 행사에 참석해 직접 감사 인사도 드리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기부와 선행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담담하게 소회를 밝혔다.

대전지역의 기부문화와 관련, 정 회장은 "대전은 시민 참여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타 광역 시·도에 비해 대기업이 많이 분포돼 있지 않기 때문에 큰돈이 들어오는 경우가 극소수"라며 "대신에 시민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착한 가정', '착한 가게', '착한 기업' 등 캠페인을 통해 하루 천 원이나 만 원, 한 달 삼만 원 등 소소한 금액들이 모여 지난해 125억 원을 모금한 것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수억씩 이끌어내는 것보다 작은 마음과 정성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금액이 더 의미가 있으며, 붐업(Boom up)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금전적인 기부가 아니더라도 시간을 들여 자원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하거나 재능기부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시민들도 많다. 또한, 지역 언론도 모금회의 캠페인과 활동들을 널리 알리며 기부문화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최근 모금단체 기부금 횡령, 정의연 사태 등으로 '기부 포비아'가 등장해 공동 모금회도 종종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들 단체와 다르게 우리나라 유일한 법적 모금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1998년 그동안 국가가 모금하던 방식을 바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을 제정해 모금회를 만들었고, 이후 모금을 민간에 이관했으며, 법적 모금기구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매년 국정감사나 감사원 감사, 보건복지부 감사 등 다양한 감사를 받는다.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배분을 위해 NGO 단체들도 분기별로 방문해 이중 삼중의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는 "특히, 최근 만났던 기부자는 정의연 사태에서 모금회가 배분 정지 등 제재 조치를 취한 사실을 알고 오히려 모금회를 신뢰하게 됐다"며 "또한 모금회는 대전에서 모금한 기금을 중앙모금회로 올라가서 다시 배분받는 구조가 아닌 전액 대전에서 다 쓴다. 인건비조차 중앙회에서 모두 지원받아 모금액 100%를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배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대전에 있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나눔에 많이 동참할수록 대전에 계시는 어려운 이웃들이 보다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

정 회장은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진행되는 '희망2021 나눔캠페인'은 움츠러든 경제 상황과 기부 피로감을 고려해 모금 목표액을 모금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대전의 올해 나눔목표액은 51억 원으로 지난해 캠페인 목표액 60억 원과 대비해 9억 원이 감소했다. 올해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로 지역 경기가 침체되고 시민들도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코로나19와 수해로 피해를 본 이웃을 돕기 위한 나눔과 성원이 뜨거웠다. 그는 "현재 시민들이 기부 피로감이 많이 쌓인 상태지만, 세상을 좀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들고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도록 나눔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작은 정성의 소액 나눔으로도 기부에 동참할 수 있으니 시민들이 많이 참여해 준다면 모금목표액을 넘어 이웃들에게 더 큰 희망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어 "올해는 코로나19와 수해, 장마 등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모금회장을 맡으면서 많은 미담을 접할 수 있었다. 어떤 기부자는 수억 원이 되는 큰 금액을 기부하고도 끝까지 익명을 고집했고, 대전교도소 수형자들은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십시일반 836만 원을 모아 기부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며 "생활 보호 대상자인 어떤 기부자는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100만 원이라는 결코 작지 않은 성금을 내놓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대전시장과 교육감, 각 구청장 등 지역 리더들이 릴레이 기부에 나서고, 급여의 일부를 선뜻 내놓기도 했다. 특히, 테이블이 두 개 있는 작은 김밥집이 하루 1000원을 기부하는 '착한 가게'에 가입한다고 연락해 줬을 때는 차라리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과 같이 남을 돕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같은 말을 했다는 것. "이웃에게 준 것보다 열 배가 넘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정 회장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대전지역 모금의 외연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힘을 쏟겠다. 기관이나 단체들의 기부도 중요하지만, 대전의 특징이기도 한 아주 작고 소소한 기부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들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외연을 보다 더 확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우리 주변에 정말 어렵고 힘든 소외이웃에게 적재적소로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만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안전망이 정부 차원에서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가족들이 생활고로 인해 자살하는 사례가 지역에서 있었고, 전국적으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 그는 "우리가 진짜 어렵고 힘들 때 마지막으로 전화하는 곳이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였으면 하는 좋겠다. 불이 나면 119에 신고하고, 범죄가 발생하면 112에 신고하듯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희망의 전화를 할 수 있는 곳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 정태희 회장은

1958년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시골집 작은 방 하나에 모여 살다가 초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초등학교 때 서울 외가로 보내져 서울 영본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중학교에서 2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대전에 와 대성중학교를 다녔다. 단국대 경영학과와 대학원(경영학 석사) 졸업 후 또다시 대전으로 금의환향해 1991년 삼진정밀을 차린 뒤 치열한 젊은 날을 보냈다. 자금 500만 원으로 직원 1명과 15평짜리 작은 공장을 빌려 ㈜삼진정밀을 차리고 대전에서 밸브산업을 처음 시작했다.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전시회를 며칠 앞두고 터져버린 밸브를 두 시간 동안 발바닥으로 막고 버텼다. 낮에는 전국을 뛰어다니며 판로를 넓히고, 밤이 되면 스패너를 들고 작업장으로 돌아와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탄생한 삼진정밀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에 초정밀 밸브를 납품하고, 영하 196도에서도 동작하는 초저온 밸브를 개발해 산유국에 수출하는 등 전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내년이면 창사 30주년을 맞는 어엿한 밸브 업계 1위 기업 반열에 올랐다. 대담=정재필 취재2부장·정리=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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