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조성진 대전 리사이틀

조성진 리사이틀 포스터. 사진=대전예술의전당 제공
조성진 리사이틀 포스터. 사진=대전예술의전당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1년 만에 다시 대전을 찾았다. 지난 24일 대전예술의전당(이하 예당) 아트홀은 오랜만에 관객들로 북적였다. `조성진 리사이틀` 공연 시작을 1시간 앞둔 오후 6시 30분 예당 정문에는 이미 수백 명의 관객들이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줄을 서고 있었다. 이들은 스마트폰 QR코드를 이용해 전자출입명부 인증을 한 뒤 발열체크와 손 소독 등 철저한 방역수칙 아래 설렌 마음으로 공연장에 입장했다. 예당 1층 로비는 공연 시작 전부터 모처러만의 공연에 기대감으로 후끈 달아올랐고, 1000여 석의 객석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관객들로 채워졌다.

검은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은 앳된 모습의 조성진이 피아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오자 객석에서는 커다란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성진은 피아노 앞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건반에 손을 얹었다. 첫 번째 곡은 슈만의 `숲의 정경 Op. 82`로 9개의 소품으로 이뤄진 작품집이다. 연주는 부드럽고 편안한 흐름 속에서 어둡고 음산한 리듬과 정서가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뤘다. 특히, 거대한 검은색 악기 옆에 홀로 앉아 온갖 드라마를 그려내는 그의 피아노 독주는 그 어떤 공연보다도 짜릿한 엑스터시를 제공해줬다.

두 번째 곡은 쇼팽의 독창적인 피아니즘을 가장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는 `스케르초`로 어둡고 신랄하며 고집스러운 매력으로 넘치는 작품이다. 처절한 비명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불협화음과 예상치 못한 폭발과 긴장이 느껴지는 대목에서 빠르게 활보하는 그의 손과 리드미컬한 몸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곡의 정점에서는 의자 위로 몸이 튕겨 올라가거나 타건에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격렬한 연주를 펼쳤다. 특별히 강한 악센트가 필요할 때 치솟는 팔과 몸의 진동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곡은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낭만주의 피아노곡의 절정이라 불릴 만한 이 곡은 형식과 내용의 결합, 종교와 세속의 충돌, 텍스트와 음향이 한자리에서 멋지게 융합되는 리스트의 최대 문제작이다. 초인적인 비르투오적 기교와 파워, 극적 전개를 끌고 갈 탁월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대곡으로 이날 조성진이 갖춘 모든 기량이 거침없이 발휘됐다. 손은 자유롭고도 역동적으로 건반 위를 오가며 기교가 넘치면서도 색채감이 가득한 연주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써 내려갔다. 가톨릭 신자였던 리스트의 간절한 기도가 느껴지는 종결부를 끝낸 조성진은 건반 위에서 손을 내려놓고 허공을 몇 초간 응시했다. 공연장은 순간 쥐 죽은 듯 적막감이 감돌았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마침내 조성진이 일어서자 1, 2층의 관객들은 모두가 기립해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관객들의 환호에 보답하듯 조성진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유유히 무대를 퇴장했다. 많은 관객들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조성진이 떠난 무대를 바라보며 공연의 여운을 음미했다.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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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사진=도이치 그라모폰 제공
조성진. 사진=도이치 그라모폰 제공
조성진. 사진=도이치 그라모폰 제공
조성진. 사진=도이치 그라모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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