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건축학과 신입생들에게 건축학을 소개하면서 건축의 가치를 설명할 때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명언을 인용한다. 2차 세계대전 중 소실된 영국 의회 의사당 하원의 복구를 다짐하며 1943년 10월에 한 연설의 일부분이지만 건축의 역할에 대한 명쾌한 정의로 인용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개념은 건축 규모에 상관없이 반영되고 있다. 한 뼘에 불과한 작은 오두막일지라도 정성스럽게 지어졌다면 한 가정의 행복하고 든든한 보금자리로 기능한다. 압축된 경제 성장과정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그간의 과정에서 많은 건축물과 구조물들이 급속히 세워졌고 노후화와 도시 미관 저해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사라져왔다. 도시의 개조는 한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며 대대적인 도시 재개발과 신도시 개발은 환경·경제적으로 큰 부하를 수반하므로 쉽사리 이루어지기도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 아래 소외된 공간들에 대한 소소한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보다 풍성한 도시 생활의 묘미를 얻을 수 있게 된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 고가도로와 육교는 자동차 증가에 따른 신속한 입체적 교차 통행을 위한 구조물로 곳곳에 설치되었었다. 그러나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 교통량 증대에 반하는 확장의 어려움, 건립 당시 상대적으로 고려가 부족했던 미관 등 이유로 상당수가 철거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기능적 이유로 여전히 존재하는 고가도로나 육교들이 있다. 상당수가 특별한 쓰임새 없이 대부분 도시민들이 좋아할 거리가 없는 소외된 공간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 남산1호터널로 연결된 한남제1고가차도와 육교 아래 만들어진 쉼터는 건축적 접근을 통해 그저 토목 구조물의 하부에 불과했던 곳이 얼마든지 도시의 쾌적한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서울시가 실시한 고가 하부 공간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현상설계 공모로 이루어진 이곳은 구조물의 기능적 성격만을 드러내는 회색의 그늘 아래 엘이디 조명이 흩뿌려진 나팔꽃 모양의 차양 구조물과 함께 카페, 화장실 등이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 적절하게 자리 잡아 지붕 씌워진 도시 소공원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이곳 북한남 삼거리는 바로 옆 옛 면허시험장 자리에 뮤지컬 전용 홀이 들어서고 인근이 새로운 감각의 소규모 상업 가로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해짐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느낌의 포장된 공터일 뿐이었는데 건축가는 여기에 나무가 울창한 숲속이지만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흩어지는 오솔길, 별빛이 흩어지는 들길과 같은 이미지를 주고자 했다고 한다. 다세대 주택 혹은 다가구 주택은 번잡한 도시생활의 애환을 상징하는 느낌마저 드는 건축물들이다. 특히 이들 주택의 반지하층은 영화 `기생충`에서도 나왔듯 칙칙함의 이미지가 그러지 않아도 삶의 비루함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회자되고 있는 곳이다. 이제는 점점 주거공간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그러나 적지않은 또 하나의 소외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이 소소한 변화와 함께 지역 주민의 바람직한 근린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SH청년건축가 주도형 공간복지 프로젝트` 시범사업의 하나로 거주성이 떨어지는 낡은 반지하 주거공간을 지역내 커뮤니티 시설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선보였다. 곰팡이가 피던 남루한 반지하방들이 주민 소통방, 공유주방 등으로 환골탈태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들을 설계한 청년 건축가들은 모두 현장답사와 주민 인터뷰 등을 통한 세심한 관찰과 분석에 의하여 정말 지역 밀착형 공간을 제안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소소한 변화를 통한 우리 건축환경의 개선은 이러한 지역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전문적 소양이 어울려 이루어진다는 점을 증명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소소한 변화가 우리 건축,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약간의 과감함과 약간의 세심함만 있다면.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