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하굣길에 저수지가 있었다. 한겨울 눈이라도 내리면 꽝꽝 언 저수지 수면은 마치 은백색의 비단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순결한 그 표면에 이따금 누군가 발자국을 남겼다. 아무리 두텁게 언 얼음일지라도 저수지 횡단은 강심장 아니면 엄두낼 수 없는 일. 대단하다 생각은 들었지만 따라하고 싶지는 않았다. 계절이 바뀔 즈음에는 옆동네 아무개가 저수지를 건너다 얼음이 깨져 영영 귀가 못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도시개발로 저수지는 메워져 아파트 단지로 변했고 덩달아 해빙사고로 생명 잃는 일도 사라졌다.

그러나 얼음길은 더 넓어졌고 위태로워졌다. `살얼음`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얇게 살짝 언 얼음을 살얼음이라 부른다. 도로 위 살얼음은 그야말로 죽음을 부르는 살(殺)얼음이다. 블랙아이스라고도 일컫는 도로 위 살얼음으로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선 100건 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상주~영천 고속도로에서는 블랙아이스로 인한 교통사고로 차량 35대가 파손되고 7명이 사망했다.

살얼음이 도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살얼음은 도처에 널렸다.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상위권에 속한 우리나라는 지난해 855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빼앗겼다. 산재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한 이 정부의 약속이 무색하다. 취약한 사회안전망 속에 지난해 1만 3799명, 하루 평균 37.8명이 대한민국에서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순위, 40~50대 사망원인 2순위가 자살이다. 언제서야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벗게될지 까마득하다. 좀처럼 위세가 꺾이지 않는 코로나19로 숱한 자영업자들과 직장인들이 오늘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었네/ 행복하다 믿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얼지도 녹지도 않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네// (중략)// 가장 깊은 곳 위에/ 가장 얇은 살얼음". 브로콜리너마저가 2017년 발표한 노래 `살얼음`의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 시절. 우리의 안녕은 어디서부터 실종된 것일까.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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