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근 대전세종연구원 원장 "이 시대 지역담론 제시하고파"

정재근 대전세종연구원장이 대전·세종의 싱크탱크로서 역할과 미래 비전에 관한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호철 기자
정재근 대전세종연구원장이 대전·세종의 싱크탱크로서 역할과 미래 비전에 관한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호철 기자
담론(談論). 학문적으로는 어려운 용어다. 그는 이렇게 풀었다. "그 시대 그 시절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늘 얘기하는 게 사회적 담론이다." 한마디 더 붙였다. "쩨쩨한 담론은 곤란하다." 희망의 담론을 형성하고 증폭시켜, 바로 지금, 희망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해 지방행정 주요 보직과 충청권 자치단체를 두루 거친 정통 내무관료에서 대전세종연구원 원장으로 깜짝 변신한 정재근(59) 전 행정안전부 차관이 던진 담론이다. 지난 15일 대전 중구 선화동에 있는 대전세종연구원(대세연)을 찾아 정 원장으로부터 대전·세종 두 광역도시의 싱크탱크로서 역할과 미래 비전에 관한 담론을 들어봤다.

-지난 9월 29일 허태정 대전시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으니 이제 취임 한 달여 지났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간의 소회와 활동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초등학교부터 대전에서 다녔다. 문화·대신·자양초등학교를 2년씩 세 군데나 다녔다. 그래서 초등학교 동창들이 많다. 대전은 정말 내 고향과 다름없다. 공직에서 은퇴하면서 고향에서 연구원장 일을 하고 싶었다. 지역에 있는 연구원이 지역을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는지 경험한 적 있어서다. 10년 전 충남도에서 기획관리실장으로 근무했었는데 10년 만에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고향을 위해 근무를 하게 돼 기쁘고 영광스럽다. 취임 후 생각해두었던 몇 가지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기본적인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연구원의 발전계획 준비나 최근 3년간 대전시의회-연구원 협력 사항, 3년간 연구직원별 수행과제 리스트, 연구직원 과제별 정책화 정도 등을 확인하고 연구원 발전에 필요한 사항들을 도출하고 있다."

-자타공인 `행정의 달인`이면서 국내외 대학에서 여러 분야의 학업을 쌓았다는 점에서 대세연 신임 원장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감이 높다.

"감사한 일이고 어깨가 무겁다. 연구원의 가장 큰 기능은 담론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담론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 늘 입에 올리는 얘기들이다. 담론이 무엇이냐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3만 불 나라를 이룬 건 1960-1970년대 `잘 살아보자`는 희망의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 눈만 뜨면 국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고 힘을 모은 결과다. 지금 얘기하는 것이 우리 미래가 되는 것, 과거에 우리가 생각하고 얘기한 게 지금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쩨쩨한 얘기만 하면 나중에 쩨쩨해진다. 그게 담론의 힘이다. 그래서 싱크탱크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담론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쩨쩨한 담론이 아니다. 쩨쩨한 담론으로 흐르지 않고 시민들이 논의해야 하고 중요한 것을 툭툭 던져서 시민과 지식인 사이로,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대세연이 연구결과물을 증폭시켜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해야 한다."

-대전세종연구원보다 여전히 대전발전연구원을 익숙해 하는 시민들이 많다. 대전세종연구원 출범의 경과와 의미는.

"대전세종연구원은 2001년 3월 대전발전연구원으로 처음 개원했다.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했고 당시에도 대전시와 세종시 간 상생발전을 위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2015년 4월 대전-세종 상생협력 업무협약이 체결되면서 두 도시 간 공동연구원 설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대전시와 세종시가 복합생활권을 영유하는 지역공동체라는 인식 아래 상생협력과 공동발전을 선도하자는 사명을 가지고 대전세종연구원으로 새로 출범했다. 대전세종연구원은 두 도시의 균형개발과 지역경제, 사회발전 등 시정 전반에 관한 과제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분석, 구체적인 정책 대안 제시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월 허 시장이 대전-세종 지역통합 화두를 꺼냈다. 대세연의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행정체제 개편에 대해선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전문가라 생각한다. 몇 개 자치단체는 내손으로 발족시켰다. 제주특별자치도, 청주·청원(통합청주시), 마산·창원·진해(통합창원시) 등 자치단체 통합에선 주민투표법 개정해서 투표까시 실시해봤다. 행정구역 통합은 코스트(비용)가 굉장히 크다. 통합이 필요하다고 해도 기술적으로 어떻게 담론화하고 논의하느냐에 따라 코스트 줄이면서 목표로 갈 수 있다. 논의 방식 기제가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통합 자체가 목표가 돼선 안 된다. 통합으로 어떤 경쟁력을 얻고 시민이 얼마나 행복해지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광역경제권, 생활공동체 측면에서 양쪽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행정체제 개편까지 가게 할 것이냐를 두고 중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 방법은 대세연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달 하순쯤 세미나를 하려고 한다. 행정이나 정치 영역에서 하면 갈등 소지로 비춰질 수 있어서 전문가와 학자들의 생각, 그들이 생각하는 대전-세종 중심의 중부권 메가시티를 만들어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고 대한민국 경쟁력 선도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들어보자는 것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는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사이에 들어가 있다. 혼자만의 행정력으로 수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어떤 식의 협의와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는지 해외사례도 들여다보면 좋지 않겠나."

-오랜 공직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1989년 대전이 직할시(현 광역시)로 승격됐을 때다. 당시 대전시에서 기획계장으로 2년여 일했다. 이제 막 출범한 대전직할시의 장기발전계획을 세우는 일이 맡겨졌다. 다른 지역의 경우 사기업에 컨설팅 용역을 주는 게 흔한 시절인데 무작정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찾아갔다. 대한민국 최고의 싱크탱크에서 대전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KDI가 어떤 곳인가.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모인 집단이다. 일개 지방의 도시계획을 우리가 왜 수립해야 하냐고 콧방귀 뀌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대전은 그냥 대전이 아니다. 얼마전 대통령이 다녀갔고 대전엑스포를 준비 중인 도시다. 대덕연구단지와 둔산 신시가지가 완성되면 그냥 대전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대전의 도시계획은 국가 전체의 계획과 연계 속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냥 원 오브 뎀(one of them) 수준의 지방계획이 아니다. 대전이 실패하면 나라가 실패한다`고 불을 뿜었다. 그제야 KDI 박사들도 끄덕끄덕하더니 일이 성사됐다. 그때 내가 5급 사무관에 불과했다. 무모했지만 공직 선배들이 `역시 정재근`이라며 칭찬해줬다. 그렇게 KDI에 의해 만들어진 게 `2020년 대전직할시 장기발전구상`이다. 이 구상으로 지금의 대전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구상과 지금 대전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역대 8명의 전임 원장을 지나 9대에 이르렀다. 신임 원장으로서 임기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게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 연구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사회적으로 해야만 하는 의미 있고 가치있는 일을 자기 스스로 힘으로 해냈을 때, 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지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연구원으로선 연구과정이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이를 통해 나온 연구성과물이 정책화되고 주민 삶의 현장에서 실현되는 걸 봤을 때 행복하지 않겠나. 원장으로서 연구원들의 연구 산출물이 페이퍼워크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반영돼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 스포츠 조직 못지 않은 활력이 넘치고 대화와 토론의 문화가 꽃 피는 대전세종연구원을 만들고 싶다."

◇정 원장=대전고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행정학)와 미국 미시간대(도시및지역계획) 석사, 대전대 박사(행정학)를 취득했다. 26회 행정고시 합격 후 대전시를 거쳐 행정자치부, 대통령 비서실, 충남도, 외교부 주독일 공사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지내고 2016년 행정자치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무리했다. 한국행정학회 부회장, 한국지방자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술연구 분야에서도 전문가다. 유엔 거버넌스센터 원장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유튜버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정 원장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정재근TV`에 올려놓은 인문학적 행정, 지방분권과 자치역량 등 지방자치 강연은 후배 공직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담=정재필 취재2부장·정리=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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