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리 작가
캐리리 작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루고 싶은 꿈은 `버린 꿈`이 되기도 하고, 이뤄낸 꿈은 종종 `직업`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삶은 없다고 위로해 보지만, 어렵게 이뤄낸 꿈은 희생과 책임이 뒤따르며, 어느새 개인적 영역을 침범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공간이 된다. 해마다 전시를 거듭할수록 `좋은 작업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강한 의문점이 드는 요즘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작가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전시를 해왔지만 이러한 질문들에는 정말 답이 없다.

내게 있어 좋은 작업들은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들이다. 전시장을 방문했던 한 미술관계자는 내 작업을 놓고 개인적이고 사적인 심리적 영역을 스스로 관찰하며 그것들을 가지고 들어가 공통된 정서적 감정을 건드리는 작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 작업의 의도나 목적을 결코 `치유` 혹은 `위로`에 두지 않는다. 다만 어느 특정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천천히 오랫동안 익혀야 하는 개개인의 `잃어버린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 내 작업을 보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과거보다 펼쳐질 미래를 기대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때문에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슬픔을 작업에 얹힌 어쭙잖은 가벼운 위로로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가 느끼는 감정의 영역은 작가가 쉽게 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업을 보는 이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행복을 찾고,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업으로 기억해주기를 원한다. 단순히 물질적인 즐거움, 시각적인 화려함이 아닌 정서적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깊고 담백한 그 무언가가 되기를 바란다. 모두에게나 한 번쯤은 `누군가 그곳에 함께 갔었으면 좋았을걸`하는 장소가 있는 것처럼, 내 작업이 머무르는 공간이 혼자 머무르기에는 아쉬운 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들꽃처럼 오랜 시간 정을 들인 나의 작업들도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여운을 남겼으면 좋겠다. 캐리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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