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세평] 인간에 대한 예의, 생명에 대한 예의

2020-11-11기사 편집 2020-11-11 07:30:47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김주리 한밭대 인문사회대학 인문교양학부 교수
얼마 전, 한 산모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중고거래 사이트에 20만 원에 팔겠다는 글을 올린 일이 있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글을 삭제하기는 했으나 아이를 상품처럼 거래하겠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개탄해 마지않았다.

이 놀라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간이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일까? 아니면 한 인간의 생명이 고작 20만 원이라는 데서 오는 놀라움일까? 그도 아니면 인간의 생명에 값어치가 매겨진다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놀라움일까?

인간의 상품화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지만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늘 거래 대상이 돼왔고 상품화돼왔다.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한 인간의 가치는 그의 학력과 경력, 외모와 자질을 따져 거래되고 있으며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그 인간의 상품성 역시 평가되고 있다. 그러니 인간이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명 자체에 값어치를 매기는 일은 충격적인가? 살아있는 생물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한 1980년 미국 대법원의 차크라바티 판결 이래 인간의 육체, 유전자와 생명 역시 일정한 값어치가 매겨지는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한 인간의 혈액에서 특이한 항체를 분리 배양하여 만들어진 모 세포주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한다든지, 아이가 태어날 때 배출되는 제대혈을 보관하는 사업이 활성화된다든지 하는 일들은 인간의 생명 자체도 얼마든지 상품화되고 거래될 수 있는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해 원하는 자질을 갖춘 맞춤 아기를 만들어낼 가능성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 영아의 생명에 20만 원이라는 값을 매기는 것은 놀라운가? 영아의 존재에 매겨진 20만 원이란 값은 무엇일까? 한 인간의 존재와 가능성에 20만 원이라는 값을 매긴 근거는 무엇일까? 적당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기의 생명에 매겨진 20만 원이라는 값에 분노하는 것일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의 값어치는 얼마든지 헐값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생닭 한 마리가 6000원, 계란 한 판에 4500원, 살아있는 금붕어 한 마리 3000원… 헐값의 생명들에 놀라지 않으면서 영아의 생명에 매겨진 가격에 놀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인간의 상품화, 생명의 상품화가 얼마든지 존재하는 오늘날 우리는 왜 한 산모가 충동적으로 아기를 판매하려 한 사실 앞에서 새삼스럽게 놀라는가? 생명에 가치를 매기고 인간을 거래하는 행위에 분노하는 것은 왜일까? 한 인간의 존재와 생명에 대해 우리는 왜 단순한 상품의 값어치 이상을 요구하는가? 어째서 우리는 한 인간의 존재와 생명이 그의 경력이나 자질, 외모나 조건 같은 스펙으로 단순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왜 우리는 한 인간의 존재와 생명을 그의 스펙으로 단순화하는 사회 시스템에는 분노하지 않는가?

나는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단편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비 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소설의 주제도 좋지만 무엇보다 제목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에 대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의를 다한다는 것, 그의 이력이나 자격, 출신이나 외모를 떠나 그가 그저 인간이기에 같은 인간으로서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의란 그의 생명 자체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며 그의 존재를 상품 이상으로 대한다는, 그의 가치를 학력 같은 스펙과 자질에 두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 시스템은 그저 인간이기에 소중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으며 그 시스템 속 우리는 얼마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있는가. 인간 생명의 가치, 그 소중함에 대한 인정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주리 한밭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