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의 황상은 스승의 격려에 힘입어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게 된다.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다산과 만난 지 60년이 지나 노년에 접어든 황상은 자신의 삶을 술회한 `임술기`를 적어 스승의 무덤 앞에 조아린다. 부끄러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았노라는 고백을 한 것이다. 황상의 나이 75세 때 일이라고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평생 공부에 게으르지 않았노라고 스승 앞에 와서 고한 그 진실된 사제 간의 만남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제자의 더딘 성장을 믿어준 스승의 마음도 귀하고 그 스승을 전심으로 뒤따른 제자의 마음도 그러하다.
플라톤은 자기가 맡은 일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상태를 `아레테(arete)`라고 했다. 어원은 그리스어 `아리스토스(aristos)`에서 온 말인데 탁월함(exellence) 즉 `가장 좋다(the best)`를 의미한다. 맡은 일을 탁월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따라야 할 텐데, 거기에는 재능도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선한 영향력을 미칠 때 비로소 `가장 좋다`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게 아닐까.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황상의 중심에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이라는 가장 좋은 `아레테`가 있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며 부지런하게 노력하면서 말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빠른 속도의 세계가 코로나19 라는 급 브레이크에 걸렸다. 조금은 천천히 가도 괜찮을 텐데, 시대가 너무나 빠른 것에 몰입한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뒤떨어질까 봐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정보에 촉각을 세운다. 하기야 어느 시대에나 문제는 있는 법이고 위기도 있다. 삶 속에 알 수 없는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비극도 겪는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시간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일구며 살아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불안정한 우리 사회 현상도 어쩌면 속도를 늦춰가면서 남과 나를 함께 생각하는 존중과 수용의 보편적 정의, 그 집단지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급진적 변화의 조짐은 아닐까 싶다.
위기 혹은 위독을 뜻하는 크라이시스(crisis)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어원 자체가 병세의 전환점을 뜻하니 아직은 무엇인가 미결상태라는 의미이다. 위기를 넘길 것인가, 위기에 넘어갈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 외에 어떤 것이 더 유익할까 생각해 본다. 지식이 출중하나 그 지식을 선용하지 못할 때는 늘 재앙이 뒤따른다. 너무나 빠르게만 달려온 우리 삶에 대해 근본적인 돌아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느리더라도 꼼꼼히, 탁월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생각할 지혜의 시간이다. 곧 새살이 돋을 것이다.
홍인숙 대전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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