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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대화와 소통

2020-11-05 기사
편집 2020-11-05 07: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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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창덕 신부·천주교 대전교구 원로사목자
심리학자 '듀에인 슐츠(Duane Schultz)'는 "인격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나를 넘어서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산다"고 말했다.

인격을 라틴어에서 '뻬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가장무도회에서 사용하던 가면(假面)에서 나왔다. 숱한 본성을 지닌 내면과 달리,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잘 정돈된 자아의 모습을 의미한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절제된 모습으로 다른 사람과 대면할 때 그 사람의 성숙한 인격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대면에서는 아무도 다른 이의 가면을 벗기지 않는다는 약속이 돼 있다.

사람의 진실한 면모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에서 저울질 된다. 어느 때는 걱정거리 때문에, 어떤 때는 슬픔에 짓눌려서, 또는 기쁨이 가득 찼을 때, 그리고 보다 큰 목적을 이루려고 합의할 때, 대면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말은 의사소통, 즉 대화의 도구인 것이다.

'래리 킹(Larry King)'은 25년 이상 토크쇼를 진행하며 하느님 빼고 다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대화의 신'이라 불렸던 그는 대화의 중요한 기본을 진실과 공감, 그리고 경청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인격을 벗어던진 폭력적 언어가 춤을 추고 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들, 멸시, 비난, 비방, 냉소, 조롱, 저주, 협박 등을 통해 자신의 가면을 벗고, 상대의 가면을 벗기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요즈음 정치 현장에서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투쟁 일변도의 아픈 현장을 접한다. 대화의 목적인 객관적인 실체들은 찾기 어렵다. 국민을 도외시하고 자신이 속한 당의 이익과 이념을 각인시키기 위해 힘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패거리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핵보다 더 무섭다는 분열이 조장된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다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대화나 소통이 없는 민주주의도 있다는 말인가? 민주주의는 무조건 다수로 의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갖춘 다수가 합목적성에 따라 의결돼야 한다.

정치에는 이념과 가치를 달리하는 여야가 대립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대립은 투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합목적성을 찾기 위한 것이다. 대립하는 데는 분명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국가와 국민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국민의 유익을 위하는 목적을 공통분모로 정하고, 당리당략을 삭감해 나갈 때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소통은 이뤄지며, 국민의 마음도 열리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경선 초기, 이라크 전쟁 문제로 찬반이 나뉘어 있을 때, 오바마는 "우리 민주당에는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다. 하나는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애국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전을 찬성하는 애국자다"고 연설해 국민의 마음을 열었다.

작은 시골 천주교회의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던 한 소년이 실수로 미사에 사용할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리자 신부는 소년의 실수에 대한 이유를 묻지 않고 뺨을 치며 "다시는 제단 앞에 나타나지 마"라고 소리쳤다. 이 소년은 장성해 하느님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의 지도자인 유고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 대통령이 됐다. 동시대 다른 천주교회에서 미사를 돕던 한 소년이 역시 미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신부는 곧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대화를 했다. "네가 나처럼 앞으로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은 자라나서 그 유명한 대주교 '풀톤 쉰'이 됐다. 인격과 삶의 질은 말의 성숙에 있다.

세상을 파괴로 몰고 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화와 소통 대신에 힘을 통해 상대방의 인격을 손상시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며,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대화와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고, 다음으로 인격을 갖춘 진실한 말, 넓은 가슴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수용적 자세, 그리고 상대와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아 소통으로 초대하는 공명이 필요하다. 이창덕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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