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사랑을 싣고`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KBS에서 1994년 첫 방송을 타 10년 넘게 장수했다. 설렘을 간직한 첫 사랑, 방황의 길에 손 잡아준 은사 등 고마운 이들을 찾아 떠난 사연과 여정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와 최고 시청률 47%도 기록했다. 추억의 힘은 세 2018년에 이어 지난 달 새 진용으로 방송을 재개했다.

평범한 이들에게 사랑은 TV가 아닌 `택배`에 실려 온다. 지금은 초등학교 고학년 된 아이들이 어릴 적 아빠보다 더 좋아한 아저씨가 있다. 생면부지의 택배 아저씨다. 장난감이며 책이며 온갖 반가운 것 들을 문 앞에 조용히 두고 가는 택배아저씨야 말로 아이들에게는 일상의 산타클로스였다. 그런 산타클로스들이 아프다. 아니 죽고 있다. 이달에만 세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늘며 택배노동자들의 생명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은 택배노동자가 올해 들어 10명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택배는 내가 주문하고 결재해 받은 것이라도 그것을 옮긴 노동자들의 목숨이 조금씩 분산된 짐이다. 그렇게 사방팔방 기운이 분산되며 바닥까지 소진된 택배노동자들은 오늘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언박싱(unboxing)` 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상자를 열고 물건을 꺼내다`라는 뜻의 영어 어휘다. 요즘은 구입한 물건의 포장을 뜯어 개봉하는 과정이나 그것을 담은 영상으로 통한다. 애타게 고대하던 택배가 도착하고 그것을 개봉할 때의 언박싱 쾌감은, 기실 택배노동자들의 생명을 축내며 누리는 잔혹한 기쁨일지도 모른다.

올해도 12월 24일이면 캐롤이 울리고 전국의 아이들은 밤사이 놓고 갈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겠지. 이제야 알겠다. 폭증하는 선물의 분류와 배송에 산타클로스도 심야노동, 밤샘노동에 시달리며 얼마다 고단했을지. 만약 크리스마스가 한 해에 며칠 더 있다면 제 아무리 산타클로스라도 몸져 눕지 않았을까. 이제 천상의 산타클로스, 지상의 택배노동자에게도 휴식을 보장하자. 현실이 된 잔혹동화의 결말은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 "그날 밤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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