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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詩가 익어 가는 시간

2020-10-13기사 편집 2020-10-13 07: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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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홍인숙 대전대 교수·시인
코로나로 힘겨운 시간 중에도 어느새 가을은 깊어간다. 상강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돈다. 정중동이라고 사회적, 심리적 거리만큼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문학인들의 창작열은 오히려 더욱 뜨겁게 지펴지는 듯하다.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문학의 속성이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시를 창작하고 싶어 하는 문학 지망생들이 소재의 빈곤에 대해 고민을 토로할 때가 있다. 뭔가 시적인 발상이 있어야 시를 짓겠는데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며 하소연한다. 영화도 보러 가고, 산책도 하면서 골똘히 생각하는데 도통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가 잘 알려진 시인에게 "시는 그냥 느끼는 거야, 시인은 언어를 부리는 거지, 말을 가지고 놀아야 진짜 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듣기는 쉽지만 창작은 역시 어렵다.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밀어의 세계이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꼽히는 1930년대 백석 시인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고 친근한 사물들을 통해 그림을 그리듯 묘사한 시를 많이 발표했었다. 당시 서구의 새로운 사조들이 유입되는 가운데 백석 시인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시풍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그의 시에 대하여 마치 곳간에 볏섬 쌓듯이 단어들을 주섬주섬 나열했다는 혹평도 있었고 토속적인 풍경과 사투리를 사용해 민족 고유의 특성을 잘 살려낸 시라는 상찬도 있었다.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돌덜구에 천상수(天上水)가 차게/복숭아나무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

백석의 '초동일(初冬日)'이라는 시이다. 흔히 보이는 농촌의 겨울 풍경이다. 初冬日이면 이제 막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시기이다. 꽤나 추운 날씨일 텐데도 아이들은 밖에 나오는 게 좋기만 하다. 코끝 시린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같이 있는 게 즐거운 아이들이다. 겨울 한나절 햇볕 따스한 흙담벽에 나란히 붙어서서 말간 콧물을 흘리며 달착지근한 무감자(고구마)를 먹는다. 짧은 겨울 햇살이 주는 안온함이라니! 겨우내 쉬고 있는 돌절구 안에는 추위를 재촉하는 겨울비가 차갑게 담겨 있고, 찬 바람 스쳐 가는 복숭아나무에는 시래기 타래가 시득시득 말라가는 평범한 겨울 정취이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마치 과녁의 정곡을 맞힌 화살을 보는 것처럼 심미적인 쾌감을 경험한다. 이 시의 백미는 평범한 소재로써 농촌의 겨울 풍경을 그렸지만 '흙담벽'이라는 일상의 세계와 '천상수'라는 성스러운 상징을 대비함으로써 인간 삶의 두 축인 聖과 俗의 진실을 발견해낸 데 있다. 마치 부서지기 쉬운 흙담벽 같은 현실의 삶에서 희망의 상징인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기원하는 듯 흔한 빗물을 하늘에서 내린 天上水로 명명한 것이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질긴 뿌리를 보는 듯하다.

좋은 시를 쓰는데 소재가 되지 못할 대상은 없을 것이다. 시의 매력은 정서를 표현하는 순도 높은 언어를 통해 새로운 사유를 발견하는 데 있다. 백석의 시 '초동일'에서 보이듯 시를 쓰기 위한 특별한 소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해내는 눈이 중요하다. 어떤 사물에서 한순간 가슴에 와닿은 느낌을 붙들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대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질 때까지, 시가 나를 만나줄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홍인숙 대전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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