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민음사/ 476쪽/ 1만 6000원

실제 삶이 상상과 혼재되고 꿈이 일상과, 과거가 현재와 절묘하게 섞여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소설은 작가가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을 쓰기 십 년 전에 쓴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서사적 기법인 `별자리 소설` 방식의 실험과 풍요로운 상상력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별자리 소설은 연대기적 흐름을 거부하고, 단문이나 짤막한 일화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특유의 내러티브 방식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이며, 공간적 배경은 폴란드의 작은 마을 피에트노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동행인 `R`과 몇 달간 노바루다에 머물며 마을과 주변인을 관찰하고, 가발을 만드는 신비로운 이웃 `마르타`와 교류하며 끝없는 이야기 타래로 빠져든다. 시간적 정합성 없이 파편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실과 전설이 얽혀 있는 단편들은 끝없이 흘러간다. 책을 읽다 보면 성좌처럼 흩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가지 단서를 가늠케 되고, 그 단서들을 통해 연결점들을 이어 나가게 된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집`이다. 낮에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의 공간인 집이지만, 밤이 되면 주인공은 서서히 되살아나는 이 집의 숨소리를 듣는다. 주인공의 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집은 마치 그의 내면과 같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지하실과 넓은 방, 1층과 다락방이 있는 건물로 상상한다. 집은 아무개 씨처럼 텅 비어 있기도 하고, 마렉 마렉과 에르고 숨처럼 괴물이 살면서 그 안에 함께 사는 이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집은 마르타의 이야기처럼 낮과 밤이 혼재된 비현실적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자연` 또한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정원을 가꾸고 잔디를 깎거나 버섯을 따는 행위가 이뤄지는 일상적이고 목가적인 자연이다. 다른 하나는 접근하기 어렵고 꿈처럼 신비로운 자연이다. 주인공의 꿈에서 균사체가 되는 여성, 물속 괴물에 대한 아무개 씨의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자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동시에 존재의 영원함 또한 경험하게 된다. 이와 함께 두 개의 집과 두 개의 자연을 연결하는 중요한 모티브는 `꿈`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기록하고 분석해 인터넷에 기록된 꿈과 비교한다. 주인공은 집과 마르타, 자신의 피부에 대한 꿈을 꾼다. 꿈은 주인공이 자신과 바깥세상을 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이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된다. `우주`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주인공은 천제력을 관찰하고, R은 구름의 모양을 예측하고, 마르타는 하늘의 색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들이 관찰하는 대상은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혜성과 월식이다. 보름달은 늑대 인간 에르고 숨을 미치게 하고, 프로스트를 괴롭힌다. 누군가에게 우주는 지식의 원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신과 혼돈이 깃든 미지의 장소다.

수많은 이야기는 단편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마치 꿈속과 같이 삶과 죽음, 행복과 절망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가 거주하는 집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는 꿈을 통해 경험하고, 누군가는 점괘나 우주에서 답을 찾는다.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대상이 돼 자신을 재발견한다. 그것은 자신의 낮의 집과 밥의 집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다. 또한, 자신의 낮의 자연과 밤의 자연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다. 그것은 꿈을 꾸는 일이며, 삶을 꿈꾸는 사람과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다. 이 우주 안에서, 이 자연 안에서, 그리고 이 집 안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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