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한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전형적인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시월이 시작됐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달인만큼 국가적 기념일과 행사가 유독 많은 달이다. 주목해야 할 시월의 기념의 중에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이 있다.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가을의 중심 10월과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자라는 기간 10개월의 의미를 담아 2005년 개정된 모자보건법에 의해 정해진 기념일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임산부를 배려 보호하자는 사회적 분위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생긴 날이다.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의 예시는 현재 버스와 지하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핑크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임산부 배려 석이다. 핑크색 엠블럼으로 `임산부 먼저` 라는 표시가 명확히 있는 지정석임에도 불구하고 팔다리 건장한 남성분이 다리 벌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볼썽사나워 민망해 질 때가 있다. 이런 작은 배려 하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출산율을 기대하는 것은 진짜 염치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전세계에서 꼴지 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합계 출산율이 지난해 0.92명으로 세계 198개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이보다 더 낮은 0.8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결혼을 미루는 경향이 있어 내년 출산율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예상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정부는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보편 복지 개념에 따라 유럽식 보육 복지 모델을 도입해서 복지에 역점을 두고 출산율을 높이고자 애써왔다. 주요 정책으로 신혼부부 주거지원, 난임부부 지원, 무상보육 및 교육 확대, 아동수당 지급, 공공 어린이집 확충, 돌봄 교실 확대 등이 있다. 지난해부터는 고용노동부까지도 나서서 배우자 출산 유급 휴가도 3일에서 10일로 보장하고 육아기 근로 단축도 최대 2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하고 시행했다. 모두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 방위적 정부의 노력들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2006년부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금까지 150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오히려 저출산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매년 약 10조원의 재정을 투입한 꼴이지만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이는 현재의 저출산 대책들은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또한 계속되는 저출산 악화 원인이 일자리-교육-주거-의료 문제의 불균형이나 불안 등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뜻한다. 자신의 생존마저도 위협받는 벅찬 환경 속에서 누가 감히 번식을 꿈꿀 수 있겠는가? 어쩌면 현재의 저출산 문제는 가진 건 오로지 인적 자원이 유일한 국토 면적이 좁은 나라에서 경쟁을 강조하는 교육체계 덕분에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한 나라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저출산 해결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실질 경제 활동 가능 인구의 감소를 뜻하지만 동시에 나라의 활력이 사라지는 무서운 일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임신-출산-육아의 각 단계마다 세밀하고 정교한 대책도 지속적으로 필요하지만 아이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결혼-임신- 출산-양육의 과정이 고통과 부담과 희생이 아닌 축복과 행복이 되도록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함께 참여하고 노력해야 한다. 나의 가족이 아니어도 직장이나 일상에서 새 생명을 품은 임산부를 보면 공동체가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자리 양보 등 따뜻한 배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결혼, 임신 출산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날이 왔으면 한다.

오한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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