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철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본부장
최요철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본부장
지난 9월은 독서의 달이다. 한국은행 직장 게시판엔 전자책, 오디오북 등 비대면 독서를 장려하는 행사 안내가 떴다. 디지털 독서가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풍속이라지만 난 여전히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나는 종이책이 좋다. 때 마침 지인이 요즘 같은 시절에 읽기 좋다고 하며 `월든`이라는 책을 내밀었다.

월든은 미국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스물여덟의 나이에 2년 2개월 2일 동안 월든이란 이름의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다시피 살면서 체험, 관찰, 사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이다. 월든은 자연을 예찬하고 물질문명을 비판한 성찰적 기록으로, 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현재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과 함께 미국의 19세기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까운 사람이 권하는 책들은 항상 재미있게 봤는데 이번에 받아 든 월든은 책장을 술술 넘기며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로우의 사상과 신념이 코로나 시대를 견뎌내는 데 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문 내용과 책 말미의 연대기를 엮어서 소로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그려 보았다.

첫째 그는 원조 자연인이다. 우리나라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세상 풍파를 다 맞은 다음,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지긋한 나이가 돼서야 종착지로 자연에 안긴다. 그런데 소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스물여덟의 이른 나이에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둘째 인간 존중을 실천한 휴머니스트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교사가 됐지만 며칠 만에 학생체벌을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또 광장에서 사람을 사고 파는 것을 허용하는 정부에 반대해 납세를 거부하다 감옥에 수감되기도 한다.

셋째 정신적 가치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물질적 안락함을 중시하지 않았다. 소로우의 집안은 연필 공장을 운영하였으며 연필은 우수한 품질로 유명했다. 그러나 소로우는 가업을 통해 부를 쌓는 대신 호수에 배를 띄워놓고 구름을 쳐다보거나 숲을 헤맸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사업은 팽개친 채 빈둥거리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정작 그는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을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는 가장 매력적이고도 생산적인 작업에 투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불굴의 정신의 소유자다.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던 마흔다섯 짧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선택한 삶에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죽음에 이르기 두 달 전 건강이 극도로 안 좋았던 때에도 그는 편지에서 `살아있는 순간들을 최대한으로 즐기고 있으며 아무런 회한이 없다`고 적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짜증스러운 정도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안감과 고립감으로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 때 스트레스를 받는 계층의 폭이 넓어지고 정도가 심해진다. 정신적 치유를 돕는 제도적 지원과 더불어 지역사회의 관심과 교육이 중요하다.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발생한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답답함을 잠시 내려놓은 채 마음을 다스려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싶다. 방풍도 안 되는 원룸 통나무집에 살았던 월든 자연인에 비하면 우리 삶은 물질적으론 크게 부족하지 않은 것 같다.

정신수양을 위해 한 가지 권하고 싶은 방법은 계족산 황톳길을 걸으며 월든 자연인의 시를 읊어보는 것이다. 내가 계족길을 걷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계족길에 깔린 황토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맨 발바닥은 계족산 황토에 닿아 있으며, 내 생각은 드높은 곳에 떠 있다.

최요철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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