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꽃으로 태어났어(엠마 줄리아니 지음·이세진 옮김)= 여린 꽃 한 송이가 세상에 피어나 인내와 헌신으로 사람들을 돕고 나누며, 기쁨과 감사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담아낸 팝업 그림책이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글에 담긴 삶을 향한 꽃의 아름다운 고백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삶에 대한 굳은 용기와 위로, 소망을 전해 준다. 이와 함께 참신한 이미지와 아이디어, 감각적인 색의 조합, 심플한 드로잉, 팝업 장치 등이 어우러져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그림자처럼 흑백으로 표현된 그래픽적인 그림에 크고 작은 팝업이 놓여 있다. 꽃잎을 열듯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펼치면 빨강, 노랑, 보라, 파랑 등 화사한 색깔을 입은 꽃이 피어난다. 또한, 아이의 머리에 화관을 씌우기도 하고, 원형 종이를 돌리면 나무 위에 꽃이 한꺼번에 활짝 피어난다. 책을 세워 펼치면 아코디언 형태를 갖춘 `병풍 책`이 돼 책을 또 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비룡소·12쪽·1만 4000원

◇장날(이윤진 지음·이서지 그림)= 4m 가까이 되는 길이에 우리네 옛날 장터 풍경이 펼쳐지는 병풍 그림책이다. 조선 시대부터 근대 사회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희로애락을 감칠맛 나게 표현하는 풍속 화가로 잘 알려진 이서지 화백의 그림이 앞면 가득 담겨 있다. 그림 속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튀어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엿장수, 달걀 장수, 사주쟁이, 방물장수 같은 물건을 사고파는 흥겨운 목소리와 이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흥정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책의 뒷면에는 경기도의 모란장, 강원도의 정선장, 경상도의 화개장 등 오늘날 열리는 방방곡곡 오일장을 담은 사진으로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 준다. 뒷면에 따놓은 그림을 보며, 앞면 그림에서 장터에 나온 사람들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보고, 장터에서 파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림과 설명을 보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솔수북·38쪽·3만 2000원

◇나(조수경 지음)= 공부에 지친 아이가 화자인 이야기와 삶에 지친 어른이 화자인 이야기를 통해 아이와 어른이 서로 삶의 동력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이는 미래의 나를 만나고, 어른은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서로의 존재를 깨닫고 삶에 희망을 품게 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느끼는 삶의 무게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주인공은 서로 다르지만, 페이지마다 비슷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어른과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결국 아이와 어른은 같은 인물이다. 아이와 어른이 또는 아이와 아이, 어른과 어른이 함께 읽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제작해 특별함을 더했다. 특히, 아이가 미래의 나를 만나고, 어른은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증강현실(AR)을 넣어 독자가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솔수북·40쪽·1만 7000원

◇물이 되는 꿈(루시드폴 지음·이수지 그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노래 `물이 되는 꿈`이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루시드 폴의 이 노래는 한 편의 시 같은 아름다운 노랫말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연의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담은 노랫말은 이수지 작가의 그림과 만나 더욱더 깊어졌다. 힘차면서 잔잔하고, 강하면서 유연한 물의 이미지를 수채화로 섬세하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동안 이수지의 그림책에 등장했던 `파랑`과 `물`의 표현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본문에 있는 QR코드를 이용해 노래를 들으며 책장을 넘기면 눈으로만 볼 때와는 또 다른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책은 병풍식 구성으로 무려 5m가 넘는 길이다. 펼쳐 세우면 그림이 하나로 이어지며 감탄을 자아낸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책을 보는 방식대로 페이지를 넘겨본 뒤, 다시 책을 길게 펼쳐 하나로 연결된 이미지로 보면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청어람아이·64쪽·1만 7000원

◇과자가게의 왕자님(마렉 비에인칙 지음·이지원 옮김·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지내던 소소한 행복을 일깨우는 그림책이다. 달콤한 냄새가 가득한 과자가게에 앉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도넛을 먹는 순간 주인공인 왕자는 도넛을 한 입 베어 물며 `행복`은 골칫덩어리라고 말한다. 왕자는 아무리 행복한 순간이라도, 더 좋은 행복을 기대하며 지금의 행복은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 왕자의 곁에 있는 연인 칵투시아는 그저 케이크와 도넛이 맛있을 따름이다. 왕자의 무겁고 긴 고민을 때로는 가볍고 단순하게 응대하는 칵투시아의 모습은 그 순간조차 즐기는 듯하다. 그저 과자가게에서 맛있는 과자를 먹는 이 행복이 곧 끝날 거라며 우울해하는 왕자에게 그럼 맛있는 걸 좀 더 시키고 더 있다 가자고 명쾌하게 말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퍽 사랑스럽다. 결국 작가는 이러한 두 남녀의 대비를 통해 행복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하지만 옳고 그름은 이 과자가게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두 남녀의 흥미로운 대화와 최고로 맛있는 도넛이 있을 뿐이다. 사계절·92쪽·3만 2000원

◇연남천 풀다발(전소영 지음)= 미처 보지 못하고 살았던 풀꽃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매일같이 산책하며 관찰했던 홍제천 주변의 작고 낮은 풀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실제 산책한 곳은 홍제천이지만 동네 이름을 따서 `연남천`이라 이름 지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거기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도시의 풀꽃 속에도 삶이 담겨 있음을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정갈한 색감과 정제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제까지 우리의 삶은 저마다의 속도를 인내하지 못하고 같은 속도로 가라고 채찍질하는 삶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와 함께 작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삶이어도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풀들을 통해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우리의 삶을 응원한다. 좁고 오염된 이 도시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풀꽃들을 보면서 투정 부리지 말고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달그림·56쪽·2만 3000원

◇어린왕자(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지음·김화영 옮김)=처음 어린 왕자를 만나는 어린아이와 지난날 어린아이였던 어른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팝업북이다. 책은 거의 모든 그림을 팝업으로 만들어 페이지마다 세밀하게 작동하도록 장치해 놓았다. 여타 팝업북이 원본 그림 중 몇몇 장면만을 싣고 텍스트를 축약한 데 비해 원 텍스트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면서 원본 그림을 훼손하지 않고 2차원의 세계를 3차원의 세계로 솟아오르게 해 새로운 `어린 왕자`를 개척했다.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손으로 날개를 들추고, 탭을 당기고, 톱니를 돌리고, 만지면서, 이전 2차원의 책을 접했을 때와는 또 달리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풍성하게 만드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7페이지의 그 유명한 모자 그림이 있는 날개를 들추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가 나와 마치 모자를 들춘 듯한 느낌이 든다. 13페이지를 펼치면 어린 왕자가 서 있는 소행성 B612호가 빙글 돌아가 별의 운행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57페이지에서는 폐허가 된 돌담 위에 앉은 어린 왕자를 향해 노란 뱀이 꼿꼿이 상체를 세우는 동작도 직접 연출해 볼 수 있다. 문학동네·64쪽·3만 8000원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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