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숙영 충남 부여군민
송숙영 충남 부여군민
파면 유적이라는 부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5년 되었다. 5년 동안 백제 역사 유적 지구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있다. 한옥이 부쩍 많아져 고도다운 운치가 생겼다. 한옥을 지으면 1억 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은 백제고도에 어울리는 도시 외관을 갖추겠다는 구상인 듯하다. 궁궐이 있었으리라는 부소산 자락의 건물은 모두 철거되어 텅 빈, 사라진 과거를 연상케 한다.

그곳에 여자고등학교가 있다. 그 학교도 이전해야만 한다. 건물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학교가 사라진다고 기억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생태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할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수를 보낸다. 문화는 세월의 켜를 입으면서 쌓여가는 것이다. 학교 건물이 사라지기 직전의 나무와 바위, 생태를 기록으로 남겨 사라진 뒤에 기록으로 보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자고 일어나면 허물고 새로 올리는 한옥에 대해 갸웃할 때가 있다. 수입나무에, 업자의 안목으로 지어진 한옥이 문화 유산의 면모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미 부숴버린 60년쯤 묵은 붉은 벽돌집이 오히려 근대건축문화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 지은 한옥은 이천 년대의 문화일 뿐, 모양이 같다고 문화유산은 아니다. 여고에서 생태지도를 만드는 작업은 기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 문화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아름답다.

신동엽 문학관 마당에 7년 이상을 자란 오죽이 베어졌다. 지난 9월초 인근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문학관이 간곡히 만류했음에도 베어졌다. 문학관과 함께, 어린 나무에서 멋진 풍취를 보이는 큰 나무로 자란 오죽이 민원 해결 차원에서 단칼에 베어졌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영원히 싹을 말리는 제초제까지 뿌렸다. 이제 댓잎을 스치는 바람에서 시깃발의 시가 함성처럼, 때로 속삭임처럼 들려올 일은 없겠다. 대숲을 배경으로 근사하게 휘날리는 시깃발이 포토존으로 각광을 받을 일도 이제 없다. 배경이 된 콘크리트 벽과 비슷한 색의 시깃발이 궁색한 문학관이 되었다.

신동엽을 넘어서는 문학인이 부여에 있을까? 그의 시 세계는 천오백년 전 백제에 뿌리가 닿은 문화인데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부여군에서 민원을 해결한다는 이유로 야만스럽게 대처했다. 개인과 개인의 민원이 부딪쳐도 이렇게 무지막지한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아야 옳은 게 아닌가. 명색이 지역의 유일한 문학관인데 민원 해결을 위해 다른 고민을 할 수는 없었을까 안타깝다. 앞으로 또 다른 민원들도 이런 방식으로 처리될 것인지 걱정이 무겁다.

문학관에는 문학관만의 문화가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과 신동엽 문학관이 다르지 않다. 부여가 진정으로 백제 고도로서 품격을 가지려면 이런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여고에서 생태지도를 그리겠다는 감수성으로 오죽을 대했다면 그리 쉽게 벨 수 있지는 않았으리라. 문학관과 함께 시인의 생가에서 뿌리를 단단히 내린 오죽이었다. 이제라도 다시 심어 이 모든 과정들이 우리가 문화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다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원을 해결하는 문화적 방법도 이참에 심사숙고하고. 송숙영 충남 부여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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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깃발
신동엽 문학관 앞마당에는 부여 출신 임옥상 화백의 설치미술 `시의깃발`은 신동엽의 시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송숙영 충남 부여군민 제공]
시의 깃발 신동엽 문학관 앞마당에는 부여 출신 임옥상 화백의 설치미술 `시의깃발`은 신동엽의 시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송숙영 충남 부여군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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