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무수한 사실과 기억의 집합체다. 어떤 사실과 기억에 천착하는가에 따라 같은 도시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변주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풍성할수록 도시는 매력적으로 변모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가령 런던의 베이커 가 221b에는 셜록 홈스 박물관이 있다. 1990년 3월 27일 개관한 셜록 홈스 박물관은 셜록 홈스와 왓슨이 1881년부터 1904년까지 살았던 베이커 가 221b 집을 빅토리아 시대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거리 이름도 소설의 배경과 똑같은 베이커 스트리트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셜록 홈스가 파이프 물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기둥들이 자연스레 박물관으로 안내한다. 셜록 홈스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이 사망한 지 올해로 90년. 셜록 홈스 박물관은 국적과 나이, 성별을 초월해 여전히 셜록 홈스 팬이라면 일생에 꼭 한번 가고 싶은 장소다.

쇠락하던 산업도시 리버풀은 고장 출신인 비틀스를 통해 관광객 유입에 성공하며 활력을 되찾았다. 비슷한 사례는 국내도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요즘은 발길이 뜸하지만 대구 중구의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은 대구를 찾는 이라면 둘러봐야 할 명소로 부상했다.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된 김광석 길은 가객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생전 그의 모습과 노래 등을 벽화로 장식했다.

이런 류의 시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 도시의 개성과 특징을 지우고 전국 어디를 가나 기시감을 갖게 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실력의 문제인지, 관심의 문제인지 때로는 훌륭한 지역 문화 자원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경우도 있다.

천안시 성환읍 국도 1호변의 국보 제7호 봉선홍경사 갈기비를 품은 봉선홍경사는 내년에 창건 1000주년을 맞는다. 향토사가들과 역사학계는 봉선홍경사 창건 1000주년이 천안의 역사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기대감 높지만 정작 천안시는 기념사업계획이 전무하다. 고려 시대 번성한 봉선홍경사는 조선 시대 초기 폐허화 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됐다. 시민적 상상력이 결합된다면 폐사지여서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1000주년 기념사업 부재가 가을이 천 번 반복된다는 `천추`(千秋)의 한으로 남을까 염려된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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