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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자유와 일탈의 경계

2020-09-16기사 편집 2020-09-16 07: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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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주리 한밭대 인문사회대학 인문교양학부 교수
요즈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들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느끼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의 입을 가린 마스크와 곳곳에 비치된 손소독제에서 문득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느낀다. 또 확진자 동선 정보를 확인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電波)가 나의 위치이력을 정보화하여 타인에게 전송한다는 사실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 일상에서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가 꽤 많은 자유를 누려왔다는 사실이다. 돈과 시간의 여유만 있으면 언제든 식당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스포츠를 즐기며 주장을 외치고 예식을 추구하며 술잔을 부딪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우리의 일상. 그것이 자유라는 사실을, 일상의 꽤 많은 활동들이 금지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자유라는 말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상식처럼 통용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 속에서 국가 재건을 시작하던 1950년대만 해도 이는 새로운 용어였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소설인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자유라는 말을 둘러싼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54년 서울신문에 발표된 자유부인은 국문학자 장태연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오선영이 가계를 돕는다는 이유로 명동 양품점에 취직하면서 각종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매력적인 중년여성 오선영의 육체와 시선을 통해 1950년대 사회 문제로 거론된 사치품, 밀수품과 댄스 열풍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외 원조 경제로 집약되는 1950년대의 열악한 경제 상황에서 보석과 나일론 치마, 코티의 화장품으로 치장한 유한부인들은 끼리끼리 모여 계를 모으고 밀수품 수익이나 뇌물 수수의 뒷소문을 나누며 애인의 팔짱을 끼고 최신형 캐딜락 승용차 드라이브와 미 해군 구락부에서의 댄스를 즐긴다. 물론 이 모든 물건과 행위는 당대 사회에서 '금지'된 것들이다. 그들은 댄스홀 출입과 사치품 향유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고 강변하는데, 이때 자유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선택과 행위를 의미할 뿐 그에 따른 책임이나 그로 인한 파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선명한 광택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나일론 치마와, 외간 남자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댄스의 리듬감은 금지된 것이기에 자유를 넘어 일탈의 영역에 속한다.

물론 자유와 일탈의 경계가 금지 유무로 선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옳고, 규범에서 벗어난 일탈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자유부인이 선풍적 인기를 얻은 후 50년대 사회는 '자유부인'이라는 낙인으로, 가정과 주부의 영역과 역할을 벗어난 여성의 행동을 개인의 자유로운 행복 추구로 보는 대신에 금지를 위반하는 일탈로 간주하며 매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 여성들의 규범을 벗어난 일탈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 여성의 자유로운 사회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행위가 남에게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인가 아니면 한 사회의 규범을 벗어난 일탈인가를 나누는 게 아니라, 그가 자신의 행위에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감염병의 대유행이라는 사회 상황에서 우리는 일상의 많은 행위를 때때로 금지당하고 있다. PC방과 노래방, 유흥주점 영업 금지, 50인 이상 실내 모임 금지, 마스크 착용 없이 대중시설 이용 금지 등등. 온갖 금지와 제한의 딱지가 붙은 일상 속에서 오늘날 우리는 50년대 자유부인의 주인공과 달리 금지에 대한 위반이 더 이상 자유가 아님을 알고 있다. 자유란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성숙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각자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많은 것들이 금지된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자유를 새삼 느끼듯, 우리는 일상의 자유 가운데 그에 수반되는 책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김주리 한밭대 인문사회대학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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