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현 우송대 엔디컷칼리지 석좌교수
손동현 우송대 엔디컷칼리지 석좌교수
서울 사람과 충청도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지어낸 `개그` 중에 이런 게 있다. 어느 여름날 서울 아가씨 둘이 대전에 놀러 왔다. 길가에서 수박을 파는 행상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아줌마, 이 수박 한 통 얼마예요?" "월매면 사겄슈?" "글쎄요, 한 2만 원 하나요?" "뭐요? 누굴 도둑으로 아나?" "그럼, 5000원만 내면 돼요?" "뭐요? 에이, 갖다 돼지나 먹여야 겠네!"

이 충청도 아주머니는 너무나 도덕적이다. 과일값 흥정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일에서도 그는 사람 마음의 도덕적 태도를 읽어 내려고만 한다. `나는 수박 파는 하찮은 장사지만, 돈만 알고 바가지나 씌우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값을 후려치는 너희들은 나쁜 사람들이다!`라고….

그렇다. 인간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의견의 불일치에 있지만, 정말 우리를 괴롭히고 화나게 하는 것은 특히 그 의견의 불일치가 도덕적인 문제에서 생겨날 때다. 서로 도덕적 선의를 확인하게 되면 좀 싸게 팔아도, 좀 비싸게 사도 그리 속상하지 않다. 표창장을 가짜로 만들었거나 휴가에서 귀대가 좀 늦어졌다 해도, 그게 다 불가피한 일로 도덕적 선의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일들이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화를 내며 괘씸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수박 값 깎는 사소한 일이라도 그게 도덕적 악의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화가 치미는 거다. "나쁜 놈!"이라고 생각되면, 사소한 일이라도 용서하기 어려운 거다. 그 똑똑한 닉슨이 거짓말 한 번 한 거 가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런데 의견의 불일치에도 그 내막을 면밀히 살펴보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Ch. Stevenson 1963). 하나는 믿음에서의 불일치이고 다른 하나는 태도에서의 불일치다. 믿음, 곧 앎에서의 불일치란 인지적인 차원에서 `알고 있는 내용`이 서로 다른 데서 오는 의견불일치이고, 태도에서의 불일치란 합리적으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 어떤 정서적 감정적인 것으로 인한 의견불일치를 가리키는 것이다. 전자는 정보만 공유하면 같은 지식을 갖게 되어 해소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그렇게 해서 알고 있는 내용이 같아졌다 해도 그와는 별도로 여전히 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른바 `보편이성`에 힘입어 우리는 입장과 처지가 다르더라도 이견을 좁혀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믿어서는 곤란하겠다. 문제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의지에 있다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덕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소위 `인지 부조화 이론`(L. Festinger 1957)이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이 불일치를 부담스럽게 느껴, 태도에 맞게 행동에 변화를 주는 게 보통인데, 거꾸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 즉 생각과 감정을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에 했던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해놓고서 이제 와서는 그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말을 바꾸는 현상도 있다는 것이다. 야당일 때 소리 높여 주장했던 것을 여당이 되어서는 정반대로 뒤집어 말하는 사람들을 국회에서 많이 본다. 인지부조화 이론에 비춰보면 그 뻔뻔스러움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런 심리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서 이런 `말바꿈`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부도덕하면 일단 인간이 아니다. 도덕적 동물이기에 인간은 동물이 아닌 거다. 장구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최강의 종이 된 것은 인간이 서로 협력할 줄 알게 된 데 그 핵심 열쇠가 있는 거고 그 협력의 핵심 열쇠는 도덕성의 공유에 있는 거다. 평생 가야 한 번도 만날 일 없는 낯 모르는 익명의 다수와 협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도덕성을 토대로 누구나가 믿고 따를 수 있는 행동의 지침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정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지혜를 어디 가서 구해와야 할지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손동현 우송대 엔디컷칼리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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