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충남건축사회장
김양희 충남건축사회장
어느 날 지금까지 가장 좋았던 건축물이 무엇인지 물어오던 지인이 있었다. 선뜻 답하긴 어려웠으나 떠오른 건 건축을 공부하던 때 답사를 다닌 장면들이다. 낙동강의 하얀 백사장과 병산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병산서원 만대루의 아름다움, 하루종일 걷다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어느 산사의 토단에 앉아 느꼈던 싱그러운 바람과 풍경 소리, 통도사 전각들의 중첩된 지붕의 장중함과 그 사이 스며들듯 물든 푸른 하늘. 그때 기억은 자연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소쇄원의 정원과 더불어 나의 건축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친 기억들이다. 좋았던 건축물에 건축물이 아닌 장면과 기억의 모습이 떠올랐던 건 그 순간 오롯이 느꼈을 건축과 나와의 교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건축은 단순히 물성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사람의 삶이 때를 묻히고 건물 스스로 나이를 먹어가며 사람들의 기억이 덧씌워지면서 좋은 건축물로 완성되어 간다. 시간의 흐름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으로 건축물은 하나의 특별한 장소가 되며 기억속의추억은 좋은 건축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건축 자재와 공법이 발전함에 따라 건축은 새로운 외피와 공간을 조성할 수 있게 됐고 건축은 국가의 역량, 개인의 영광을 내세우며 도심 스카이라인을 가득 메운 마천루로 전세계가 제1의 위상을 내세우며 옛 바벨탑 신화처럼 첨탑을 하늘에 닿을 듯 세우고 있다. 원시시대 동굴에서 시작된 건축은 나무와 돌을 이용한 움집, 고인돌 등에서 짚과 진흙을 이겨 만든 벽돌로 보다 넓은 인간의 야망을 실현하던 건축술로 4대 문명을 거쳐 바로크, 고딕 시대를 열었다. 중세 이후 유럽 전역에 발생한 산업혁명은 건축계를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도시로 모여드는 사회변화에 새로운 공간과 형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건축적 아이디어와 새로운 공법, 재료가 만들어지면서 건축은 또 다른 발전을 이룬다. 건축의 새로운 세계를 알리며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은 엑스포의 시작이었다.

세계 엑스포는 당대 첨단기술과 미래의 이상을 알리고 뽐내는 만국의 각축장으로 기능해 왔다. 1851년 첫 박람회라 할 수 있는 런던엑스포는 건축자재로 오래 사용된 벽돌과 석재를 배제한 유리와 철골로만 시공된 `수정궁`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1889년 파리엑스포 때는 철재로만 시공된 `에펠탑`으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에펠탑이 파리시민들로부터 흉물스러운 건축물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건축은 자재뿐 아니라 기술력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다. 기술력 발전은 건축사들의 이상을 구현하고 도시와 경관이 함께 하는 것 외에 환경과 사람이 소통·교감하고자 하는 것에 이르게 한다. 2012년 시공된 SK텔레콤타워의 살짝 고개를 숙이는 듯한 절묘한 굴곡은 도시와 사회, 사람이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며 불규칙한 각도로 만들어낸 입면 커튼월의 경쾌한 패턴은 한동안 사선에 대한 역동성에 빠지게 했던 건축물이다.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축물 또한 `연결`을 주제로 자연-도시, 지역사회-회사, 고객-직원이 자연스러운 교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공공성과 개방성이 결합된 열린 건축을 구현하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시작했던 하노버엑스포의 일본관 건축에서 반 시게루는 환경과 자연에 방점을 두며 환경파괴가 적고 인간에 친숙한 종이를 활용해 거대한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환경에 방점을 둔 건축을 완성시켰다. 거미줄 구조를 연구해 섬유를 이용한 파빌리온의 시공 활용도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니 현재 건축의 모든 지향점은 사람과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건축물을 보며 느끼고 설계를 기획하는 현장에 있지만 건축의 발전이 어떠한 형태의 흐름이든 미래에 어떤 모습이든 여전히 좋은 건축물은 추억이 공유된 사람과 함께하는 건축물일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기에 필자는 좋은 건축물을 만들고자 오늘도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함께하는 세상에 동참하고자 노력한다. 김양희 충남건축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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