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24쪽/ 1만 2800원)

한국인 작가도 아닌 외국인이 한국에서만 누적 판매량 1200만 권에 달하는 작가를 아는가? 바로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작 `심판`을 들고나왔다. 신작 심판은 프랑스 문학 전문 번역가 전미연의 번역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인간` 이후 다시 한번 시도한 희곡으로 그의 상상력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심판은 천국에 있는 법정을 배경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 등이 펼치는 설전을 유쾌하게 그려 냈다. 베르베르 특유의 유머가 빛나는 이 작품은 희곡이지만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원제는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이며 2015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4만 부 이상 판매됐다. 이어 프랑스에서는 2017년, 2018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실제 무대에 올려진 바 있다.

신작 심판은 총 3막으로 구성된다. 제1막은 폐암 수술 중 사망한 주인공 아나톨 피숑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천국에 도착해 변호사, 검사, 판사를 차례로 접선한다. 제2막은 주인공이 지낸 생을 돌이켜보는 절차가 진행되며, 제3막은 다음 생을 결정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살아있을 때 판사로 일한 그는 골초로 결국 폐암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숨을 거두자마자 피고인의입장이 된다. 생전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던 피숑은 생각지도 못한 중대 범죄 혐의 등이 밝혀져 천국에서 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지상과는 다른 가치와 도덕적 규칙이 둘러싼 천상은 법정을 배경으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한 고정관념에 대해 반추하는 계기를 선사한다.

천국의 왕 천상 판사의 판결로 피숑은 천국에 남아 있거나 다시 환생하는 벌을 받을 수 있다. 그의 수호천사이자 변호를 맡은 변호인도 그의 좋은 점을 부각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천국의 검사 베르드랑이 생각지도 못한 죄를 밝혀내기도 한다. 과연 주인공 피숑은 사형, 아니 다시 태어나야 하는 삶의 형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죽은 자를 심판한다`라는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줄거리를 무겁게만 이끌어 나가지 않고 책 중간중간에 유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유머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핵심요소지만 평소 그의 장편소설과 비교하면 상당히 압축적인 분량과 구조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작가는 전형적인 언어유희와 농담에도 능하지만, 장기는 특유의 비틀기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이 책에서 비틀기를 위해 타자적 시선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때로는 사람의 시선이 아닌 동물의 시선으로, 떠돌이 영혼이나 천사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또, 이번 신작에서 그의 책 표지에 주목해보자.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처음으로 표지 그림을 그렸다. 표지에는 심판을 상징하는 저울을 든 천사가 등장한다.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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