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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법치(法治)와 무치(無治)

2020-09-03 기사
편집 2020-09-03 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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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창덕 신부·천주교 대전교구 원로사목자
교회법이라는 용어를 '까논(Canon)'이라 부른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 카논(kanon)에서 나왔는데, 카논은 규칙 또는 규범을 의미한다. 본래 목수가 선을 긋는 도구인 먹통을 의미하며, 먹줄을 긋고 그 기준선으로 나무를 깎은 데서 유래됐다.

최근 우리나라는 법의 운용을 놓고 열병을 앓고 있다. 법의 기준이 대부분 '사회적 합의'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여론과 권력의 힘으로 합의해 새 기준을 만들어 운용하기 때문이다.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비도덕적인 기준이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법을 관장하는 사람들의 주관과 이념이 같은 사건을 놓고도 판결하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법은 진영논리로 연역해 내는 대상이 아님에도, 근래에는 진영논리로 숭고한 법의 정신을 해석하려고 힘을 겨루는 모습을 보면 목불인견이다.

정의의 여신 원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케'다. 디케가 로마 신화에서는 '유스띠찌아(Justitia)'로 바뀌었다. 유스띠찌아가 영어 'Justice' 즉 정의의 어원이 된다.

초기 디케상은 저울 없이 긴 칼만 들고 있었고, 정의를 훼손하는 무리에게 응징하는 것을 상징했다. 그러다 정의의 상에 이르면 칼과 함께 저울도 들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균형 잡힌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이 아닌 법전을 들고 있다. 균형 잡힌 저울은 형평을 상징하며, 여기에서 형평이란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법질서 사이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이 정의와 형평이 개인의 주관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 과거의 끔찍한 옛 얘기가 떠오른다.

16세기 화가 '브뤼헤라'는 재판정에 장식할 그림을 주문받고 BC 6세기 페르시아에서 있었던 얘기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을 내놓았다. 페르시아 황제 '캄비세스(Cambyses)' 2세는 뇌물을 받고 판결을 한 '시삼네스(Sisamnes)' 법관을 산채로 피부 가죽을 벗겨 법관 의자에 깔고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를 법관으로 지명한 뒤 "이제부터 네가 재판관이다. 저 자리에 앉아라. 네 아비의 살가죽에 앉아 네가 어떻게 판결할지를 항상 고민하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법관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했다.

공자는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린다면 백성은 법을 피하고도 수치심이 없고, 덕(德)으로 인도하고 예(禮)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고 말했다.

'삼권 분립'의 이론을 만들고 '법의 정신'이라는 명작을 써내 미국의 독립에까지 영향을 준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인 '샤를 몬테스키외'는 법을 분별할 때에는 자신의 원칙이 있다고 했다. "나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어도 가족에게 해로운 일이라면 그것을 하지 않습니다. 내 가족에게 유익해도 조국에 해로운 일이라면 그 역시 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국에 유익해도 전 세계에 해로운 일이라면 그 역시도 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노자의 도덕경 17장에는 다스림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가장 하급의 다스림은 포학으로 군주가 권력을 사용해 독재를 해서 백성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고, 그 위의 다스림은 법치로 군주가 법대로 다스리는 것인데 백성들은 군주를 두려워하며, 그보다 나은 다스림은 덕치로 덕을 베풀며 다스리기에 백성들은 그를 존경한다. 그런데 가장 뛰어난 다스림은 무치로서, 누가 어떻게 통치하는지 백성들은 알지 못하나 모든 것이 순리대로 태평성대를 이루는 정치를 말한다. 우리말에 '법 없이도 살 사람' 이란 말이 이런 경우다. 노자에 따르면 법치는 상급의 다스림이 아니라 겨우 폭정을 벗어난 낮은 수준의 다스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치란 사람 각자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양심의 다스림이 아닐까 한다. 이창덕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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