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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사라지는 것들의 존엄

2020-09-01기사 편집 2020-09-01 07: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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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최수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한다. 이는 단지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는다. 몇 번이고 반복한 낡은 표현도 아니고, 얼치기 은둔 거사의 허망한 고백도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지금, 실제로 일어나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시 창궐하는 감염병과 그를 막기 위한 거리두기 속에서, 지금껏 가꿔왔던 생활방식은 여지없이 흔들렸다. 이동은 줄고, 만남이 기피되고, 관계는 소원해졌다. 어쩔 수 없다. 피해를 모면하려면, 혹은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변해야만 했다. 이 와중에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 돌리고, 귀 닫고, 제 주장만 앞세우는 이들. 어떤 이유를 내세워도, 그들의 행동이 다른 이들을 힘겹게 만든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상황이 낯설지는 않다. 세상은 언제나 바뀌어 왔고, 그에 순응하는 집단과 항거하는 집단은 늘 갈등했다. 다만 시기에 따라 속도와 양상이 달랐을 뿐. 안타깝게도, 현재의 변화와 갈등은 너무도 빠르고 과격할 뿐이다.

이 문제의 해결에 문화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주장은 풋내기의 허장성세, 노회한 사업가의 감언이설에 불과하다. 적어도 현실 문제 앞에서 문화예술은 무력하다. 다만 관점을 바꿀 수는 있겠다. 모두 대립하는 양쪽만 바라볼 때, 그 사이에도 다른 삶이 있다고 일깨운다. 수용과 거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때,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바로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 힘을 보여줬다. "길 위에서 만나는 우리네 이웃의 삶"이라는 이 프로그램 포맷은, 이미 여러 방송에서 활용되었다. 마을 공동체가 약해지고, 골목이 없어지고, 이웃과의 교류가 줄어든 까닭이다. 시절이 어려울수록 과거를 동경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이 꾸준히 방영된다는 사실은, 그만큼 변화가 버거운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향유했던 과거와 함께,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현재도 다룬다는 점이 차별된다.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레트로'가 아니라, 옛것을 해석해 참신한 콘텐츠로 만드는 '뉴트로(newtro)'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세대가 공감하고, 지역은 재발견되며, 변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확보된다.

여기 해당하는 사례가 서울 후암동 문방구 에피소드다. 이는 작년 11월에 처음 소개되었다. 40년 동안 문방구를 운영한 할머니의 사연은 애틋했지만, 누구나 동감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3월 다시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로 졸업식이 연기되어 전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감염병으로 인한 시대 변화의 안타까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8월 26일, 문방구의 폐업 소식이 전해졌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여파를 버티지 못했던 것. 어찌 이뿐이겠는가. 이미 수많은 터전이 휘청이고 있다.

냉정히 따지면, 지금이 아니라도 후암동 문방구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변화에는 토대가 수반되고, 인생이란 결국 소중했던 것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잠잠히 지켜볼 수는 있지 않은가. 애도하고, 갈무리할 수는 있지 않을까. 적막해진 거리에서, 불 꺼진 상가에서, 한산해진 장례식장에서 기원한다. 부디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이 제 나름의 존엄을 지킬 수 있기를. 최수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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