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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0주년] 전쟁 상흔 딛고 고도성장으로 찾아온 '내 손안의 세상'

2020-08-27기사 편집 2020-08-27 14:59:37      임용우 기자 wine@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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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 우리의 삶 이렇게 달라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 70년 동안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의 삶은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의식주는 물론, 이동 수단, 생활문화까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이 삶에 자리잡았다. 주문 다음 날 전국 어디서든 받아볼 수 있는 택배가 그러하고 혈족 중심의 대가족 문화는 핵가족을 거쳐 최근에는 1인 가구로 변한 것이 그러하다. 과거 타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몇날 몇일을 걸으며 이동하고 3대가 모여 살던 풍경은 이제 TV, 영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얘기가 됐다. 또 한민족을 강조하던 우리의 삶은 다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10여 년전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만 이뤄지던 다문화가정은 도심에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레트로(Retro), 복고라는 이름으로 1970-80년대 유행하던 옷, 문화 등이 주목받고 있다. 연대별로 변화한 문화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958년 대전역사 준공식이 열렸다. 사진=대전시 제공


◇1950년대

1950년대 대전을 포함한 전국은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시기로 꼽힌다. 동족간의 전쟁인 6.25 전쟁이 3년간 이어지며 파괴된 건축물을 재건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힘썼던 시간이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살아갔다. 전쟁고아들이 넘쳐나고 잔반을 넣어 끓인 꿀꿀이죽을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부유층들의 차와 서민들의 우마차가 함께 지나가던 시절로 빈부격차가 극에 달하기도 했다. 흔히 '양품'(洋品)이라고 지칭되던 외제 물건들이 미국의 원조와 함께 밀수로도 무수히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9개월 동안 100억 원에 달하는 밀수품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 미국제품은 서민들에게는 꿈과 희망, 부유층에게는 재력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때 미국의 원조는 근대·문화적 삶의 지표가 되며 이주민들을 성공하는 사례로 보는 계기가 됐다.

1960년대 서구 월평동은 논밭으로 이뤄져 있었다. 사진=대전시 제공


◇1960년대

1960년대는 다양한 변화가 이뤄지는 시기였다. 당시는 영화 문화 전반의 인프라가 구축되며 영화가 새로운 대중문화로 자리잡았다.

오늘날의 한국영화계가 자리를 확고히 한 때로 군사정권의 무차별 검열에도 한국적 신파극이 유행하며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1950년대 중반까지 10편 내외에 머물던 한국영화의 연간 제작편수가 1959년에는 100편을 넘어섰다. 또 군대에 대한 의무도 강화됐다. 1961년 병역의무 불이행자 자수 기간을 정하자 10일 동안 무려 24만 명이 신고했다. 하지만 군대는 문맹을 해소하고 자동차, 통신장비 등 기계문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했다. 전쟁으로 많은 농촌 청년들이 문맹이었으나 군대에서 글을 배우며 전근대적인 인습과 가치관에서 탈피하는 계기로 꼽힌다. 특히 1960년대 들어 통금이 시작됐다. 밤 외출을 금지한 것으로 무려 20여 년 동안 유지되며 야간 생활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다.

1970년대 도시새마을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1970년대

1970년대는 장발과 통기타,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며 문화적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기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를 규제하고 단속하며 국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시 장발, 미니스커트 등은 퇴폐적이고 저속하다고 규정됐다. 이 같은 사회분위기는 1970년대의 대중문화를 저항정신과 야성이 살아 있는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평가받게 했다.

당시 1가구 1주택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잡게 된다. 묵혀둔 땅으로 부자가 된 사람을 벼락부자로 일컫었다.

빈부격차도 여전했다. 중동산 수제 카펫, 실내 사우나, 인공폭포를 갖춘 집에서 호화생활을 하는 부유층과 매일 15-16시간을 노동에 시달리는 서민층이 상존했다.

1980년대 시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1980년대

1980년대는 다양한 변화가 가장 집중됐던 시기다. 1980년 프로야구 개막, 차량과 TV 보급의 대중화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부유한 가정에서만 운용할 수 있던 차량이 각 가정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며 나온 결과다. 각 가정마다 TV도 보급되기 시작하며 이를 활용한 대중문화와 취미가 발전을 거듭했다. 농촌중심의 경제구조가 산업화되며 핵가족 문화가 점차 확산되는 시기기도 하다.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았던 만큼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며 농업이 약화되는 계기를 낳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내세우며 거리로 나선 시기다.

대전시는 1989년 대덕군과 통합되며 직할시로 승격됐다.

1990년대 중구 대사동 금요장터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1990년대

1990년대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고 익숙한 많은 것들이 정립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인터넷, 케이블TV 등 지금 우리 생활의 밀접한 것들이 이 때 탄생했다. 주6일 근무, 야근, 남아선호사상 등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사회부조리가 X-세대라 불리던 신문화와 상존하던 시절이다. 디지털 문화의 발전으로 활자가 쇠퇴하고 영상매체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와 함께 컴퓨터가 발전하며 많은 새로운 산업이 나타났다. 게임, 미디어물들이 컴퓨터 하나로 해결되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 민주화 운동, 빈곤 가구 등이 급감하는 시기였지만 1997년 IMF가 터지며 경제위기를 겪기도 했던 격동의 시기다.



◇2000년대-현재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1990년대에 시작된 많은 문화들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만화시장도 디지털로 자리를 옮겨 웹툰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개척됐다. 1인 1휴대전화 시대가 열리며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동하면서도 전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후 2010년대 들어서며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자리한다. 스마트폰은 지금까지 가능했던 모든 디지털 미디어를 손 안에서 가능하도록 해 폭발적인 보급속도를 보였다. 차량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간 석유원료를 기반으로 한 차량들은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자리를 잃고 전기, 수소차들이 점차 보급되고 있다. 차세대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차량이 주목받는 이유는 친환경적인 이유와 화석연료의 고갈 때문이다. 개인 생활문화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이뤄졌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했던 가족 문화는 1인 가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다. 가족을 꾸리지 않고 단독으로 생활하는 가구를 일컫는 말이다. 1인가구들이 증가하다 보니 혼밥, 혼술 등의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어느새 동네 슈퍼마켓의 자리를 대신한 편의점은 1인 가구를 공략하며 다양한 상품을 쏟아낸다. 신석기시대부터 내려왔던 집단생활이 완전히 해체된 셈이다. 혼밥과 혼술을 위한 가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매장 한켠에 1자 테이블을 설치해 1인 식사를 편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더욱이 홈쇼핑의 발전으로 택배가 급성장한 시기기도 하다. 케이블TV를 통한 홈쇼핑은 전국의 모든 가정에서 손쉽게 다양한 상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식품부터 전자제품, 의류, 차량까지 판매하지 않는 제품이 없을 정도다. 택배 문화는 다음 날 배송에서 당일 배송, 새벽 배송까지 세분화되며 고객들의 편의를 중심으로 진화했다. 이처럼 다양한 변화는 우리 실생활에 있어 편안함을 가장 큰 목표로 해온 만큼 편리적인 문화로의 발전이 예상된다. 임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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