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인구 흡수

세종시와 대전, 청주를 연결하며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BRT 버스가 중앙전용차로를 이용해 정부세종청사 북측역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신호철 기자
세종시와 대전, 청주를 연결하며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BRT 버스가 중앙전용차로를 이용해 정부세종청사 북측역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신호철 기자
일흔 한개 나이테 빽빽한 관록의 도시가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손자뻘 도시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대한민국 6대 광역도시 대전의 마지막 자존심인 인구는 150만 저지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인구 엑소더스(exodos)는 대부분 8년 전인 2012년 7월 출범한 신생도시 세종을 향해 가는데 대전은 인구 재유입을 위한 미래 성장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

아이 울음소리와 청년들의 활발할 발걸음이 뜸해지는 도시엔 급격한 노화와 쇠퇴만이 남는다. 대전의 인구성장 잠재력을 되찾으면서 대전-세종이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중장기적 관점의 묘안 모색이 시급한 이유다.

◇인구 역성장 직면한 70년 역사의 대전시=2019년 대전시는 `출범 70주년·광역(직할)시 승격 30주년`을 맞았다. 각각 1949년, 1989년을 기준으로 한다. 대전은 조선시대 공주목 일부, 회덕현, 진잠현으로 나뉘어 있다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자리잡았다. 1914년 대전군 신설, 1935년 대전군 내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돼 대전군은 사라지고 대전부를 제외한 지역은 대덕군이 됐다.

이 시기 대전의 발전은 눈부셨다. 부로 승격된 시점부터 기존 12대 도시인 마산의 인구를 추월하고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에는 인구수로 개성을 앞지르며 광주에 근접한다. 일제의 폭력적인 개항, 병참기지화를 위한 공업도시 건설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에서 이 같은 발전 속도에 도달한 도시는 오직 대전뿐이었다고 대전세종연구원 황혜란 도시경영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밝혔다.

그는 "대전의 급격한 확장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됐다"며 "해방 이후 인구 증가 속도는 일제강점기 이상이었고 도시화와 공업화 흐름 속에서 1980년대 유성을 편입하고 대덕연구단지를 건설하면서 대전은 명실상부 대도시의 모습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도시 외연 확대와 함께 인구는 크게 늘었다. 대전시가 발간하는 `2019 대전통계연보`를 보면 1960년대 30만 수준이던 대전의 인구는 1975년 50만을 넘었고 직할시로 승격한 1989년 105만 1795명으로 불과 14년 만에 2배로 덩치를 키웠다. 이어 대전은 2010년 150만 3664명으로 급격한 인구 성장가도를 달렸고 2013년 153만 2811명으로 인구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었다. 바로 이듬해인 2014년 153만 1809명으로 소폭 줄더니 2015년 151만 선으로 떨어졌다. 2018년엔 148만 9936명으로 150만 선마저 붕괴됐다. 2012년 연말부터 시작된 세종시 중앙행정기관 1단계 이전, 2014년 말 중앙행정기관 및 국책연구기관 3단계 이전완료 등 세종시의 성장과 대전시 역성장의 역사는 이렇게 변곡점을 맞는다.

◇수도권 인구분산보다 충청권 인구 흡수=세종시 출범 이전부터 제기된 `세종시 빨대론`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강훈식 의원(충남 아산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세종시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2015-2019년 9월)간 전입인구 전출지별 현황자료 분석을 토대로 "세종시가 당초 취지인 수도권 분산 효과보다 충청권 인구 빨대효과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대전에서 세종으로 전입한 인구는 2015년 2만 5788명, 2016년 1만 7575명, 2017년 2만 3707명, 2018년 2만 2180명, 2019년 8월 현재 1만 3121명으로 모두 10만 2371명에 이른다. 반면 같은 기간 세종에서 대전으로 이동한 사람은 총 2만 4948명으로 연평균 5000명이 되지 않아 대전 인구 7만 7423명이 세종시로 흡수된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박덕흠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도 "세종시 출범 후 21만 7940명의 인구가 세종으로 이주했는데 이중 서울·경기 등 수도권은 5만 6509명(26%)에 불과하고 충청권은 13만 6781명(63%)에 달했다"며 "2006년 국토교통부가 세종시 건설 계획 당시 이주 인구의 60%가 수도권일 것이라고 예측한 수치가 빗나갔다"고 세종시 인구 빨대론을 거들었다.

그러면서 "국토균형발전이란 명목으로 충청권 공조를 통해 세종시가 탄생했으나 인접한 충청권에서 인구를 흡수하고 있다"며 "충청권에서 60% 이상 인구가 전입해온 건 충청권 상생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세종시가 충청권 상생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통계를 봐도 세종의 인구 증가세는 도드라진다. 세종시가 발간한 `2018 세종통계연보`에 따르면 세종시 출범 원년인 2012년 11만 언저리에 있던 인구는 중앙행정기관 이전이 본격화한 2014년 15만 6125명으로 크게 늘었고 2015년 단숨에 20만 선을 넘겼다. 세종통계월보로는 3년 만인 2018년 5월(30만 1932명) 30만 명대로 올라선 이후 올 4월 현재 34만 6275명으로 증가했다. 대전 5개 자치구 중 하나로 세종의 배후도시 역할을 하고 있는 인구 35만의 유성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시세(市勢)가 확장된 것이다.

◇대전시가 쏘아올린 `대전-세종 통합` 화두=허태정 대전시장은 지난 7월 23일 대전-세종 통합론을 전격 제시했다. 허 시장은 "공동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전과 세종은 행정수도의 실질적 완성과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운명공동체다. 대전-세종의 통합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균형발전 뉴딜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대전과 세종의 상생 협력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앞으로 시민사회, 정치권과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숙의하고 필요한 연구와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대전-세종 통합 구상안을 제안했다.

세종시 출범 이전부터 국토 불균형 구조개선과 국가중추기능의 지역간 연계를 위한 중부권 메갈로폴리스 구축 주장이 제시됐었지만 지역 내 반응은 시큰둥한 상황이었다.

지역사회에서는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촉발된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 화두에 대전시가 연접도시로서 `전적인 공감`을 표하며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행정수도 완성의 전 단계로 양 지역 통합 카드를 전략적으로 던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종시가 행정수도로서 위상과 그에 걸맞은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인프라가 필요하지만 대전-세종이 협력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빠르게 그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판단으로 통합을 제안한다"는 허 시장의 언급 때문이다.

여기엔 10년 후인 2030년 인구 50만의 자족도시를 목표로 하는 세종시 인구가 34만 명을 넘어섰으나 지역 정주여건이나 사회 인프라가 대전과 비교해 부족하고, 향후 행정수도 완성 논의가 결실을 맺는다면 세종시만으로 진정한 의미의 행정수도를 담아내기에는 도시의 확장성이 제한적이라는 인식도 담겨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전시와 세종시가 충청권 개별 광역지자체로 인구와 지역성장 측면에서 한쪽으로 무게가 기울 수 밖에 없는 무한경쟁구도의 양자로 대립·반목하기보다 하나의 울타리를 이루는 지방광역정부로 화학적 결합을 이룬다면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도 대등한 수평적이고 균등한 발전을 구가할 수 있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양 지역의 상호 결핍을 보완하는 대승적 결합으로 보는 시각과 함께 21대 여대야소 국회에서 여권발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 논의에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비판적인 분석도 공존한다. 허 시장이 "대전과 세종이 통합하면 인구 200만 이상의 광역도시로 행정수도 기반이 됨은 물론 중부권 한 축이 되어 국가균형발전을 이끌고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게 그 근거다.

세종시 출범 후 갈수록 인구가 쪼그라드는 대전의 정서적 박탈감을 상쇄하고 가속화 가능성이 큰 인구 쏠림을 차단하면서 대전의 내재적 성장동력 부재라는 한계까지 대전-세종 통합으로 탄생하는 200만 광역도시의 공통과제로 치환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다.

통합 논의의 상대인 세종시에서 "대전시 제안은 하나의 생활권과 경제권으로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며 애써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정의당 세종시당이 "허 시장의 주장은 시민사회에서조차 논의된 적 없는 사안에 대해 공감할 국민이 과연 있을까 의문이 든다"며 고개를 내저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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