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간호사칼럼] 을지가족

2020-08-25기사 편집 2020-08-25 14:13:00     

대전일보 > 라이프 > H+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
병원 본관 입구에 사람이 띠를 이룬다. 진료를 위한 방문자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한 줄씩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COVID-19 확산 방지와 안전한 병원 환경을 위해 동서남북으로 열려있던 병원 출입구는 지난 2월부터 본관 정문만 열어두고 모두 폐쇄한 것이 아직도 그대로다. 자유롭게 드나들던 병원은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COVID-19) 문진표를 작성 후 체온을 측정하고 열감지기를 통과해야 병원 내로 입장이 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절차는 이전보다 불편해진 경로이지만 예방의료의 기초이기에 병원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이 지키고 있다. 이 사람띠를 보고 있으니 인연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내가 근무하는 인공신장실에 일주일에 세 번 꼬박 나타나는 영동할머니, 이름말고도 영동에서 우리 병원에 다니고 있어 지명을 붙인 또 다른 호칭이다. 투석을 받으러 오는 날에는 새벽 네 시 전에 일어난다고 한다. 병원 갈 채비를 하고 밥 한술 뜬 후 할아버지 차를 타고 읍내에 있는 영동역으로 가서 대전행 첫 기차를 기다린다. 다섯 시 오십 분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하면 역과 이어진 지하철을 탄다. 병원과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 걸어서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일곱 시 사십 분 즈음이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이렇게 먼 길을 오가는 영동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한 번에 4시간씩 받아야 하는 혈액투석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다. 4시간 내내 몸속 피를 체외순환시키는 일이 쉬운 일일까. 거기다 몸에 찬 과잉된 수분을 짧은 시간에 2-3kg씩 제거할 때가 있다. 비움에 대한 가벼움도 있겠지만, 그 헛헛해진 몸을 감당하기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4시간의 혈액투석이 끝나고 나면 다시 왔던 길을 역순으로 밟고 집으로 간다. 밖으로 나와 만난 쨍쨍한 햇빛에 어지럼증이 인다. 휘청하여 걷다 말고 몸 지탱할 것을 찾는다. 또 걷다 힘에 부치어 앉거나 의자에 누웠다가 가기도 한단다. 투석 후에도 발생할 수 있는 저혈압과 근육경련, 오심이나 두통 같은 증상을 감내하며 영동과 대전을 오가고 있다. 가는 길은 온 길보다 더 멀고 길다. 투석실에서는 혹시라도 집으로 가는 중 까무러치기라도 할까 걱정이다. 혼자 가는 길이라 더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집과 가까운 병원을 다니라고 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을지 가족인데 어디로 내보내겠다는 거냐며 핀잔만 돌아왔다. 지금은 영동에 살지만, 대전이 당신의 고향이고, 친정엄마의 고혈압을 을지병원에서 발견했으며 평생 관리해 준 곳이 또한 을지병원이란다. 여기를 올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고 그리워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이곳은 엄마를 모시고 다니며 건강관리를 돕던 자신의 추억이 묻어있는 아름다운 장소인 것이다. 그 시간은 목동에서부터 둔산동까지 벌써 20년이 넘어 당신의 만성 신장병 관리까지 더하면 30년을 바라보는 인연이다.

이곳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이다. 누구나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동할머니에게는 특별한 인연으로 따뜻한 장소가 되어주었다. 그 따뜻한 인연의 끈으로 할머니는 혈액투석이라는 힘든 과정을 견딘다. 우리 병원 슬로건인 '당신도 을지 가족입니다'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아차차,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이 담긴 현재의 시간에 자신 앞의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자. 이 모두가 영동할머니와 같은 사람일 테니까. 인연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는 말을 믿는다.

이선미 대전을지대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