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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기후 위기 앞에 선 우리, 무엇을 외쳐야 하는가

2020-08-19기사 편집 2020-08-19 07: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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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주리 한밭대 인문사회대학 인문교양학부 교수
50여 일 간 이어진 올해 장마는 기록적인 폭우와 산사태, 하천 범람과 제방 붕괴 등으로 곳곳에서 엄청난 인명과 재산상 피해를 가져왔다. 수십 명에 이르는 사망과 실종자, 수천 명의 이재민과 1조 원에 이른다는 재산 피해는 가히 '재난'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뿌리가 드러난 채 도로까지 밀려 내려온 굵은 나무들과 창도 벽도 허물어져 무너진 건물들, 완전히 잠겨버린 논밭과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는 온갖 물건들은 자연의 재앙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한국현대소설에서 이러한 자연 재난 앞에 선 인간을 그리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광수의 '무정'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16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무정은 흔히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로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과 부잣집 딸인 신여성 김선형, 몰락한 양반의 딸인 기생 계월향(박영채)의 삼각관계를 주요한 갈등으로 그리고 있다.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오른 경부선 열차에서 김선형과 박영채, 이형식의 애정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데, 이 갈등이 해소 또는 봉합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바로 삼랑진 수해라는 재난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선로가 막혀 더 이상 열차가 통하지 못하는 삼랑진역에서 그들은 수해로 가족을 잃고 재산을 떠내려 보낸 이재민들을 앞에 두고 즉석 음악회를 개최한다. 가족과 재산을 잃고 물에 잠긴 몸을 부들거리는 이재민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창가를 부르는 음악회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할 따름이지만 아무튼 소설 속에서 그들이 개최한 즉석 음악회는 성공적이어서,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치하를 받는다. 그런데 즉석 음악회를 마친 후 그들은 피로와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이재민들을 보며 음악회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함을 자각한다. 저들은 왜 매해 반복되는 수해를 막지 못하며 왜 재난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가라는 의문은 '저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의 답은 뜻밖에도 외국 유학을 떠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저들에게 '힘과 문명을 주어야 한다'고 외치며 저들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한다'는 지식인의 사명감을 환기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그들은 재난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교육으로, 실행으로' 극복한다는 희망찬 비전을 품고 외국 유학을 떠난다.

과학으로 대표되는 근대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으로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1910년대 무정의 외침이 2020년대 기후 위기 앞에 선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무정의 주인공들은 반복되는 수해의 원인을 근대 과학 문명의 부재에서 찾았기에 그들은 '저들' 이재민의 문제를 외국에서 과학 문명을 배워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보며 '교육으로 실행으로' 근대 문명사회의 실현을 꿈꾼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역대급 장마와 역대급 더위, 역대급 태풍 같은 재난이란 온난화로 인한 전 지구적 기후 위기이기에 이는 '저들' 이재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저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에 더 이상 '저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가 아니라 '당장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과학이 가능케 했던 문명의 편리와 편의는 무정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 우리에게 재난의 해결책이 아니라 재난의 중요한 원인이다. 그렇기에 전 지구적 기후 위기가 가져오는 재난 앞에서 우리가 외쳐야 할 것은 '힘과 문명을 주어야 한다'는 개발의 논리가 아니라 '자연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보존의 논리가 될 수밖에 없다. 재난 피해 복구를 위한 다양한 노력 못지않게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일상에서의 실천이 앞으로의 자연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인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맞이한 비는 장마가 아니라 기후 위기이므로….

김주리 한밭대 인문사회대학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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